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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10 19:43 수정 : 2014.01.10 19:43

[토요판] 연애 외국여친 안 생겨요

▶ 젊을 때 외국 나가 혼자 공부하면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는 데는 연애가 최고겠죠. 사랑은 국경도 뛰어넘는데 연애하는 데서 상대방의 국적이 중요한 조건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들어진 성격, 가치관, 생활습관, 연애관을 하루아침에 뛰어넘는 게 쉽진 않겠죠. 그래서 이분도 계속 한국인 여자친구를 찾는 게 아닐까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한국을 떠나던 2009년 이후로 연애다운 연애를 해보지 못했다. 학위 과정을 마치고 교수가 된 지금도 전망은 어둡다. 왜? 나는 여전히 외국에 살기 때문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친구들은 질리지도 않고 묻는다. 외국 아가씨와의 로맨스는 없냐고. 하! 나는 웃는다. 친구야, 그게 그렇게는 잘 안된단다.

나는 설명하려고 애쓴다. “외국 여자와 결혼한 한국 남자를 떠올려봐. 그래, 이승만 전 대통령. 그리고? 한국 여자들은 어딜 가나 인기가 있지만, 한국 남자들은 아시아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설명이 말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못나서 외국 아가씨를 못 만나는 건 아니란다.

물론 이건 비겁한 변명이다. 활달하고 잘생긴 남자들은 외국에서도 인기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비겁함과는 별개로 한국 남자들이 아시아인이 아닌 외국 여자와 연애 또는 결혼하는 일이 아주 드물다는 것은 왜곡 없는 사실이다. 내가 알고 지내던 유학생들 중에 외국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는 서너명 있지만 외국 여자와 결혼한 한국 남자는 단 한명도 없다. 왜 그럴까? 한국 남자들이 인기가 없어서 그럴까? 그렇다면 왜 한국 여자들은 인기가 많은 걸까? 아니면 한국 남자들이 한국 여자들을 너무 좋아해서 그럴까? 한국 여자들은 한국 남자를 덜 좋아한다는 뜻일까?

내가 사는 동네에는 짝을 찾는 젊은 남녀들로 매일 북적이는 술집이 하나 있다. 술집에 들어서면 나는 바에서 맥주를 주문하고 주변을 살펴본다. 대부분 백인이다. 맥주를 받아 들고 한모금 마시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생각해본다. 누구에게 말을 걸까? 눈이라도 마주치면 다가가서 아무 얘기나 꺼내볼 텐데 아무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한국 남자들은 인기가 없는 걸까? 어느 정도 그렇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 최근 페이스북에 기반을 둔 어느 데이트 주선 애플리케이션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여성이 관심을 표했을 때 남성이 그에 응답할 확률은 그 여성이 동양인일 때 가장 높았다. 아시아 여성이 남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반면 동양인 남성의 인기는 중간 정도였다.

여유를 가장하며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있지만, 사실 술집에 있는 사람들의 인상을 살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다가 술집 한편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검고 윤기 있는 머리칼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기억과 연계된 이미지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외국 여성과 좋은 기억을 만든 경험이 단 한번도 없는 내 눈에는 대부분의 외국 여성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상대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것과 연애를 하면서 즐거운 경험을 하는 것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인종 간의 연애와 결혼이 드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건 매력의 절대법칙 같은 게 아니다. 같은 인종에게서 편안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다른 인종의 상대에게는 좀더 거친 환상을 투사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외국 남자와 결혼한 한국 여자들은 그 수가 적지 않다. 그러므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외국 여성을 만나지 않는다는 건 잘해봐야 반쪽짜리 대답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나는 외국 여성을 사귀지 못하는 것일까?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에 몰두한다. 저기 앉아 있는 검은 머리 아가씨에게 뭐라고 말을 걸까?

평생 한국 여자를 대상으로
익혀온 이론과 경험이
외국 여자에겐 쓸모가 없다
국제결혼 한 남자들 떠올려보라
이승만? 그리고 또 누구?

한국어 못하는 사람과 연애하면
한국어로 수다도 떨지 못하고
결혼하면 부모님과 소통 못하고
친구모임에도 함께 못 갈 텐데…

상당수의 한국 남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한국 여자에게 자신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산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멍청해 보이지 않을지, 어떻게 호감을 표현하면서 부담은 주지 않을 수 있는지 등등.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구애의 미묘한 규칙들을 익히기 위해 젊은 남녀들은 드라마도 보고, 술자리에서 토론도 하고, 종종 실습도 해본다. 이렇게 20년 남짓 익혀온 이론과 경험이 외국 여성 앞에선 그 쓸모를 잃어버린다. 구애의 규칙 같은 거야 새로 배우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할 때 사용하는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내가 어느 세월에 구애용 영어를 배울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몇가지 작업 멘트를 검토하다가 그냥 맥주나 마시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기로 한다.

언어의 장벽은 단지 구애의 몸짓을 좀더 어렵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과 연애를 한다면 애인과 한국어로 수다를 떨지 못한다. 결혼을 한다면 부모님은 아마도 나를 통해서만 며느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함께 참석하기 힘들겠지. 나와 가까이 지내는 한 선배 교수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 본인은 외국어를 한국어만큼 잘했지만, 장남으로서 부모의 바람에 따라 한국 사람과 결혼했다. 그러기 위해서 틈날 때마다 한국에 들어와서 짝을 찾기 위한 만남을 계속했고, 1년 남짓한 장거리 연애를 했다고 한다.

이 모든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외국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면 또 하나의 국제 로맨스가 시작되겠지만, 나는 보통 첫눈에 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상대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기 위해선 어느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강한 매력을 느끼고 먼저 접근하지 않는 한 함께 시간을 보낼 일은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외국 여성들에게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좋아하는 감정과 연애는 닭과 달걀의 관계와 유사하다. 그리고 나의 타지 생활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닭도 없고 달걀도 없다.

소개팅 못하고 출국한 30대 싱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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