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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28 19:29 수정 : 2014.02.28 21:00

[토요판] 연애 / ‘장기 연애’의 부작용

▶ 저는 20살 되던 해부터 8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2살 많습니다. 주위 사람은 우와, 대단해, 멋져요라는 감탄과 함께 어떻게 그리 오래 사귀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냥’ 사귀다 보니 8년이 흘러 있었습니다. 오랜 연애는 서로를 괴롭고 지치게도 합니다. 언젠가 그녀는 저에게 서로 몸은 다 보여줘도 마음은 보여줄 수 없는 게 인간관계라고 하더군요. 오늘은 이 씁쓸한 연애의 한 단면을 보여드릴까 합니다.

소설가 박민규는 그의 단편 <카스테라>에서, 냉장의 역사는 부패와의 투쟁이었다고 규정했다. 장기간 연애는 ‘설렘’과의 투쟁이다. 오래 사귀기 위해선 이 미묘한 두근거림을 철저하게 짓밟고 뭉개야 한다.

2003년,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친구 따라간 교회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녀는 고3이었다. 미성숙한 내가 성숙한 그녀를 만났을 때 뭔가 딱딱해지는 기분이었다. 당당하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냥 그렇게 그녀를 잊었고 시간이 흘러 20살이 되었다. 2006년 어느 술집.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22살이 돼버린 그녀는 더욱 성숙해져 있었다. 그날 바로 모텔로 갔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우린 오래갈 사이가 아니었다. 하룻밤의 불장난에 불과했다. 나는 그녀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녀도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란 참 특이한 동물이다. 남자친구 있다는 말을 들으니 진지한 관계로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심이 폭발했던 것. “그 녀석과는 헤어져”라며 진지하게 사귀자고 고백했다. 그녀는 나에게 왔다. 그렇게 1년 정도를 사귀었다. 행복도 잠시. 난 군대에 가야 했다. 입대하기 몇 달 전부터 난 모든 정성을 그녀에게 쏟아부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기다려 주었다. 서로 떨어져 지내며 소중함을 깨달았다. 2009년 1월 내가 제대하는 날, 우린 행복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4년이 되었다. 20살 때부터 이어진 8년간의 연애. 난 28살이다.

20살 때부터 8년의 연애
데이트라고 할 것도 없이
생얼에 옷 대충 입고
각자 집에서 편하게 본다

연애세포 다 죽어 설렘도 없고
그녀의 말에 집중도 안 된다
오랜 만남 탓에 감정조절 없이
욕과 육탄전 쉽게 터져나온다

장기간 연애는 내 삶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내 또래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를 만나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난 차원이 다른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한 1~2년 사귀다가 이별하고 슬퍼하고 술 마시다가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난 해방이다. 데이트랄 것도 없다. 각자의 집에서 편하게 만난다. 화장할 필요도 없고 옷을 멋지게 차려입을 필요도 없어진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고 그 돈을 다른 곳에 쓴다. 난 설렘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오랜 연애 끝에 남은) 전리품들은 초라하다. 나보고 누군가가 “결혼해야겠네”라고 말하면 “남의 이야기라고 말을 함부로 하시네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한다. 나는 남녀공학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어렸을 때부터 연애를 많이 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첫눈에 반했던 또래 여자친구가 나보다 키가 5㎝쯤 컸다. 그 친구가 먼저 나에게 고백했고 우린 사귀게 되었다. 그게 내 연애의 시작이다. 그때부터 대략 6개월 단위로 여자친구가 계속 바뀌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많은 여자 만나면서 재미나게 살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이야기를 듣지 않게 된다.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젠 그녀가 나와 싸우다 화가 나서 밖으로 뛰쳐나갈 때, 가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쓴다. 오히려 내가 먼저 나갈 때도 있다. 그녀의 말은 점점 지루해져 간다. 오래 사귀면 사귈수록 한 명이 무조건 져야 싸움이 끝난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특히 남자인 내가 바락바락 ‘대드는’ 일이 많아졌단다. 처음엔 간, 쓸개 다 빼줄 것처럼 하다가 점점 변해간단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 만날수록 서로 감정의 필터링이 없어져 간다. 처음 만났을 때 욕 한번 못했던 그녀는 이제 싸우기만 하면 ‘×발놈’, ‘×새끼’ 다 나온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똑같이 행동한다.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면서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성을 잃고 감정이 과잉된 상태로 우린 미쳐갔다. 그날도 우린 길거리에서 고성을 지르며 싸우고 있었다. 치마를 입은 그녀가 나에게 발차기를 해대고 쌍욕을 내뱉었다. 난 이성을 잃고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녀는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깜짝 놀라 손을 뗐다. 피부가 연약한 그녀의 목엔 선명하게 파란색 멍이 생겨 있었다. 멍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가끔은 설렘을 찾으러 다니기도 한다. 친구들과의 클럽행은 오랜만에 생긴 무방비 기회일 때만 가능하다. (물론 클럽이 여자를 만나기 위한 장소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늘 잘 안되면 ‘다음에 또 오면 돼’가 불가능하다. 그날 하루, 지난날 억압된 세월을 보상받아야 한다. 그곳에서 내 얼굴은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여자 때문에 혈안이 된 남자가 되어 있다. 근데 무서운 건 여자들은 그걸 다 알아본다. 항상 잘 안된다. 게다가 오랜 연애는 내 몸에 남겨진 연애 세포를 다 죽여 버렸다. 주위 여자들과도 잘될 턱이 없다.

사실 잘되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다. 단지 그 옛날의 설렘을 잠깐 느껴보고 싶은 것일 뿐. 장기간 연애는 익숙함과 길들여짐이기도 하다. 그녀 없는 삶은 쉽게 상상이 안 간다. 몸이 가난을 기억하듯이 내 몸이 그녀를 기억한다. 한창 놀다가도 시간 되면 그녀 집으로 간다. 자고 있는 그녀 옆에 가서 조용히 누워 “미안해 자기야”라고 속삭인다.

이럴 거면 왜 사귀느냐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노래가 에일리의 ‘보여줄게’다. “산뜻하게 머릴 바꾸고 정성 들여 화장도 하고, 하이힐에 짧은 치마 모두 날 돌아봐, 우연히라도 널 만나면 눈이 부시게 웃어주며, 놀란 니 모습 뒤로한 채 또각또각 걸어가려 해.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악몽을 꾸는 기분이다. 이 노래 주인공이 내가 될까 봐 너무 두렵다. 그녀는 분명 내 이상형이다. 헤어지면 분명 후회할 거다. 우린 왜 이렇게 빨리 만난 걸까. 몇 명 더 만나다가 20대 후반에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헤어지고 나서 나를 뒤로한 채 그녀가 또각또각 걸어간다면 나는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나만 쓰레기인 건가?

경상도 마초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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