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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애 / 이별에도 예의가…
▶ ‘자니?’ 전 남자친구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각입니다. 아마 술을 많이 마신 모양입니다. 헤어질 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문자를 받으니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답장을 하는 대신 홀로 밤잠을 설칩니다. 잘해보자던 사람을 문자로 이별을 통보하고 매몰차게 내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보고 싶다며 연락을 할까요. 애써 마음을 추스르는 사람에게 술김에 전화해 삶을 헤집어 놓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보자마자 한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15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 예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서른이 가까운 나이 덕에 둘 다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잊고 있던 옛 친구를 찾았다는 생각, 10여년간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에는 가까운 곳에서 다시 만났다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관계는 급진전됐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했고 온종일 카톡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고도 보고 싶어 퇴근 뒤에 만났고, 회식이 있는 날은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하곤 했다. 실연의 상처가 너무 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매일 밤 눈물 흘리던 나는 수렁에서 나와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왜 이제야 만났을까’ 우린 연일 서로에게 감동했다. 달달한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의 가치관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는 약자에겐 유독 차가웠다. 한여름 강남역 데이트에서 있던 일이다. 길거리 광고 전단을 나눠주는 이에게 그는 정색하고 “길을 막지 말라”며 핀잔을 줬다. 아르바이트생보다 더 당황한 건 나였다. “불편하면 안 받으면 되지 왜 화를 내”라고 달랬지만 그는 단호했다. “길을 막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잖아. 정식 허가를 받은 것도 아니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그를 설득했다. “우리는 놀러왔고 저 사람은 일하는 거잖아. 그럼 조금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잖아. 그리 크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먹고살자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 그 순간 평소에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했던 남자는 사라지고 <레 미제라블>의 자베르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말했다. 그가 골칫덩어리 학생 때문에 단단히 골이 난 날이었다. 학부모가 상담을 요청하며 금요일 오후 5시에 학교를 찾아오겠다고 했단다. 만나면 되지 않느냐는 내 말에 그는 “그때는 이미 퇴근했을 때야. 상담하고 싶으면 내 공강시간에 오라고 했어.” 학부모가 일을 나가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럼 월차를 쓰고 오면 되는 거지. 왜 나한테만 희생을 강요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월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그 사람이 일용직이라면? 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회사원이라면? 어쩜 이렇게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 있지… 답답했다.그는 따뜻하고 자상했지만
약자에게 유독 차가웠다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고
새벽 6시 카톡으로 헤어졌다
두달 만에 온 문자 ‘한잔할까’
만나기로 해놓고 연락 뚝 끊겨
“2주 전부터 소개팅한다는데
요새 잘되는 애가 있나봐”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그는 내 심경 변화를 모르는 듯했다. 이해심 많고 쿨하다고 생각했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뜻 모를 짜증을 내는 게 답답하기도 했을 터다. 나도 모르게 ‘나는 마음이 넓고 여유있는 사람이 좋아’라고 말하며 그를 괴롭혔고 그는 ‘너는 맨날 그렇게 살다가 평생 손해만 본다’며 한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엇갈리던 어느 날 새벽 6시, 그는 카톡으로 이별을 고했다. “좋은 사람 만나”라고. 우리 관계는 그렇게 정리됐다. ‘이럴 거면 내가 그만하자고 할 때 헤어지지’라는 황당함과 ‘그래도 만나온 시간이 있는데 아침부터 카톡 통보라니’ 하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마음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힘들었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었다. 어차피 우리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그는 새벽에 전화를 걸어오거나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냐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이 요동쳤다. 전화가 온 날은 밤잠을 설치고 다음날 일이 손에 안 잡혔다. 그렇게 몇차례 통화를 하고 나니 다시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도 생겼다. 이별 뒤 두달 만에 ‘한잔할까?’라는 문자가 왔고 2주 뒤 목요일로 약속을 정했다. 남녀간의 감정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준 상처를 보듬고 편한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2주간 초조함·설렘·기대·걱정으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던 나는 약속일이 다가오자 초라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약속날이 왔다. 보지 말자고 해야겠다. 약속을 취소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메웠으나 선뜻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당일에 약속을 취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약속을 취소할 필요도 없었다. 그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바람맞았다.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관계의 시작도 마음 급한 그가, 이별 통보도 그가 했다. 애써 마음을 다잡은 나에게 연락해 다시 보자고 한 것도 그 사람이었고 연락 없이 약속을 깬 것도 그였다. 그날 저녁에야 바람맞은 이유를 알았다. 우리 둘을 소개해줬던 지인은 “2주 전부터 소개팅하고 다니더라. 요새 잘되는 애가 있나 보던데. 어제도 소개팅했어. 걔랑 또 만난다고 하는 것 같던데?”라는 말을 남겼다. 선약이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린 셈이 됐다. 덕분에 그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마저 완전히 접을 수 있었다. 그는 또 사랑에 빠져 있다. 부디 새로운 애인에게는 같은 상처를 주지 않길 바란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박애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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