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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11 19:32 수정 : 2014.04.14 12:02

[토요판] 연애
마흔살 여자의 ‘죄책감’

▶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이 사람 마음이겠지요. 의도하지 않은 순간, 낯선 상대를 향한 연정이 싹트고 새처럼 떨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는 날들이 인생에 찾아옵니다. 바람이 날을 가리지 않고 강과 산을 스치듯, 유혹의 순간도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여기 젊은 남성에게서 설렘을 느낀 마흔살 기혼 여성의 고백이 있습니다. 다가온 인연과 다져온 가족 사이에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살이다. 어느 시인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시를 썼지만, 서른살의 나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청춘이었다. 십년이 지난 지금, 내 인생은 전혀 열정적이지 않다. 일곱살 아이와 남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남편을 두고서도 여자로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두달 전, 서른네살 그 남자를 만난 뒤 황홀한 설렘과 죄책감에 빠졌다.

남들 보기에 나는 남편 잘 만나 무난하게 살아가는 아줌마다. 먹고사는 데 지장 없고, 하고 싶은 걸 전부 할 순 없어도 어느 정도 충족하며 살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조력자 남편이 있다. 이런 내게 주위 사람들은 ‘시집 잘 갔다’는 말을 종종 한다. 실상 우리는 ‘쇼윈도 부부’다. 남편과 나는 포옹은커녕 손도 잡아본 지 오래다. 이 생활이 문제인 걸 알지만 해결하자고 상담기관 찾는 건 번거롭고, 이대로 살자니 속은 터지지만 그렇다고 헤어지는 건 더욱 골치 아프다.

요즘 난 바람날 위기의 순간에 처해 있다. 배우 김희애와 유아인이 나오는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밀회>가 남의 얘기는 아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영혼이 넘어갈 순간이 살면서 얼마나 많은지 남편들은 모를 것이다. 잠시 흔들리고 설레는 것까지 바람이라 치기엔 삶이 너무 숨 막히지 않는가. 그 정도는 암묵적 용인 아래 우리 모두 저지르는 거 아닌가. 내가 정의하는 바람은 남편 아닌 이성에게 마음을 뺏겨 정기적으로 만남을 허용하는 상태다.

남편도 아는 6살 연하의 그
귀국해서 밥을 먹자는 제안
몇년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리 두려 했지만 자꾸 웃었다

야릇한 눈빛, 미세한 스킨십
그러나 인생 선배로 대하는 듯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난 적잖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심장은 진작에 모래주머니가 돼버렸는데 왜 이러지는지 모르겠다”던 김희애의 대사처럼 단단하던 내 심장이 최근 새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서른네살의 그 남자 생각을 하면 심장이 뛰고 설렌다. 사실 그 남자는 남편도 나도 아는 지인이다. 남편은 7년 전 영국에서 뒤늦게 유학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그를 따라 그곳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 한국인 모임에서 우리 부부는 그 남자를 만났다. 당시 그는 이십대 유학생이었다. 그저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로 지냈다. 그러다 2년 전 우리 부부는 먼저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 온 뒤 그 남자와 우연히 페이스북 친구가 됐고 서로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 남자가 지난 2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내게 연락을 했다. 오랜 유학 생활 때문에 한국에 친구도 없고, 밥을 한번 먹자는 제안이었다.

JTBC 드라마 <밀회>의 한 장면 /출처 JTBC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그 남자가 먼저 앉아 있었다. 영국에서 만났던 이십대 청년은 서른네살 한 남자로 성장해 있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의 그 남자는 니트를 입었다. 하이힐을 신으면 눈높이가 같아지는 남편과 달리 그 남자는 한참 올려봐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만큼 키가 컸다. 몇 년 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지, 그와 악수를 하는 순간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여섯살 연상 여자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거리 두기를 하려 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꾸 웃게 됐다.

그 남자에게는 남편에게서 찾을 수 없는 배려가 있다. 레스토랑 의자를 빼주며 내가 앉을 수 있게 배려했고, 메뉴를 고를 때도 음식 취향이 뭔지 물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듣는 태도였다. 내 눈동자를 바라보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그 남자와의 시간은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아직도 새로운 일을 꿈꾸고 있다는 내게 “멋있다”고 그는 말해주었다. 이야기는 막히지 않았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느낀 이성과의 소통이었다.

이야기를 하며 그가 슬쩍슬쩍 내 가슴을 쳐다볼 때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나는 재킷 안에 쇄골이 보일 만큼 적당히 파인,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남자의 눈빛이 싫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문 앞에 서 있는 그의 등 뒤에서 양팔을 잡았다. “나가자”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시도한 스킨십이었다. 그 남자는 움찔하는 듯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레스토랑에 우리 두 사람만 있었고 지구는 자전을 멈춘 듯했다. 나이 마흔살에 그 남자를 통해 나는 생동하는 젊음을 느꼈다.

그 남자 또한 나를 이성으로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는 나를 여자가 아닌 인생 선배로 대하는 것 같았다.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는 헤어지며 편안한 친근감을 표시했지만 나로서는 적잖은 실망감이 몰려왔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 가방에 넣어두었던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남편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진심을 꼭꼭 싸매듯.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유부녀가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미 그와 심상치 않은 관계로 진전한 것만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 남자와 헤어진 다음날 아침,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제 반갑고 즐거웠어요.”

남편과 결혼한 뒤에도 다수의 남자가 스쳐갔다. 육체적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몇차례 데이트를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이토록 마음이 크게 흔들리진 않았다. 지금 내가 미혼이라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상상해보지만 나에게는 아이가 있다. 아무리 심드렁한 관계라 해도 남편과의 관계를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40대 초기에 조기 폐경을 겪기도 한다. 폐경이 오기 전에 여자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사실 지금까지 과정만 보면, 그 남자와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섬싱’이 있었던 것처럼 설렌다. 다음에 그를 만날 땐 어떤 옷을 입을지 벌써 고민이 된다.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나갈 작정이다. 그 남자는 어차피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 나를 편안한 선배로 보는 거니까, 혼자 설레다 끝낼 거니까,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죄책감을 덜어내 본다.

며칠 전 그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또다시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직 답을 보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마 그를 만나러 나갈 것이다.

마흔살 흔들리는 유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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