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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애 / 블로그 미팅
▶ 다들 즐겨찾기 해놓은 블로그가 한두 군데쯤은 있을 겁니다. 혹시 그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은 없나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등을 말입니다. 저는 그녀가 올리는 글의 향기에 취해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덧글만 주고받으며 소통하다가 드디어 만나게 되었죠.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2 대 8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상위 20% 부자가 부의 80% 이익을 가져간다는 법칙은 경제학을 넘어 어느 분야에든 적용된다.
이 마성의 법칙을 비틀어 응용하면 블로그 세계에서도 얼추 들어맞는다. 우리들 대다수는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다른 누리꾼들과 어울리지만, 가상 세계를 빠져나와 현실 세계에서까지 믿음직한 술친구나 연인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 블로거의 비율은 전체의 20%를 밑돌 것이다. 나 역시 인터넷에 입문한 이래로 한결같이 80%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처럼.
내 블로그는 영화나 미술 전시, 책에 관한 인상비평을 쓰는 공간이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올리다 보니 나에게도 열혈 독자들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주로 문화와 예술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20대 중후반의 여성들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소수의 열혈 독자들은 내 블로그를 수시로 기웃거렸다. 쪽지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만남을 제시하는 애독자도 더러 있었다. 나는 자판을 두들기던 손으로 그들과 악수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당시 어떤 미스터리한 여성 블로거와 아슬아슬한 온라인 밀당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블로그는 꾸준히 글이 올라오긴 하지만 방문객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녀가 내 블로그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없었으리라. 그녀의 글들은 문학작품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인용 구절 밑으로 그녀 자신의 문장들이 채워졌다. 그 둘 사이에 유기적인 연관성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문장을 읽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었다. 한두번 읽어서는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 모호한 문장들이 블로그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인용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낯선 이름이었다. 내가 모르는 작가의 책, 현학성 짙은 문장들. 고급스러운 취향이 묻어나는 그녀의 사생활.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자신의 일상 속으로 품는 그녀의 삶이란 대단히 심오하고 멋진 것이리라 생각하니, 날로 커져가던 그녀에 대한 궁금증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실시간 채팅을 하듯 댓글에 댓글을 다는 ‘댓글놀이’로 며칠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며 그녀에 대한 환상을 키워갔다. 위대한 작가들의 문장을 품는
그녀의 삶이 멋질 것 같았다
궁금증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밤새우며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해 6월 초, 우리는 만났다. 실제로 본 그녀의 모습은 블로그에서 어렴풋이 봤던 사진 속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자주 보는 만큼 각자의 블로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방치됐다. 그녀에 대한 환상은 현상 유지 상태였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괴리감이 그녀를 대할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 괴리감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기까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데이트 내내 그녀는 입을 쉬지 않고 놀렸다. 지나가는 강아지부터 처음 본 자동차와 새로 생긴 가게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며 온갖 짜증을 부리는가 하면 소화가 안되는 사소한 신체 변화에도 각종 희귀 질병과 암까지 입에 올리며 지나치게 불안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줄 몰랐다. 전형적으로 자기 얘기 하길 좋아하는 수다스러운 부류에 속하는 캐릭터였다. 이야기의 8할은 ‘예쁘다’ 아니면 ‘갖고 싶다’로 끝났으며 나머지 2할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자신의 건강 상태,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외모 지적이 전부였다. 그렇다. 그녀는 어른의 탈을 쓴 아이였다. 어린아이와 긴 시간을 놀아준다는 것은 웬만한 성인에겐 지치는 일이다. 나는 난처해졌다. 서른이 넘은 남녀 사이의 교제에서 이런 것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자체가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녀에게 그간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예상대로 그녀는 자신의 그런 면들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정말로 본인의 문제를 모르느냐 되물었더니 “과거에 교제했던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말을 몇 번 듣기는 했다”며 해맑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지만 이내 이성을 간신히 되찾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과 만나는 시간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하다고. 그런 것을 감내하면서까지 만날 정도로 당신이 내 삶에 필요하지는 않다고. 한두 달 사귀어서 사람을 어떻게 다 알겠느냐마는 이 경우는 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쉽게 개선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라는 게 그간 나의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두 달 남짓한 그녀와의 만남에 종지부를 찍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혼란스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삶에 대한 통찰로 범벅된 블로그의 그럴싸한 글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서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책과 음반, 외국 작가의 도록. 그것들은 여태껏 살벌한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그녀를 지켜준 명품 외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난 외투 속을 들여다봤다. 거기엔 지적 허영심에 가득한, 부끄러움을 모른 채 발가벗고 있는 한 아이가 있을 뿐이었다. 내 블로그는 무기한 휴업 상태에 들어갔지만 그녀의 블로그를 종종 방문하곤 한다. 이유는 불분명하다. 그녀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젠체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성적인 문체를 지닌 어떤 한 블로거가 꾸준히 그녀 글에 댓글을 달고 있었다. 31살 반포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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