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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연애 / 어떤 삼각관계
▶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주인공 덕훈은 아내를 반이라도 갖고 싶은 마음에 헤어지지도, 아내의 두번째 결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내 여자의 남자와 잠시나마 우정을 맺은 한 남자가 여기 있습니다. 그녀의 바람조차 이해하려 했던 바보 같은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세상에는 때로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도 있습니다. 그게 사랑인 거죠.
“혹시 너 동거하니?”
그녀는 전화기 너머로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 알았어?”
“느낌이 그랬어. 사실대로 얘기해줘서 고맙다.”
고맙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상하게 후련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어떤 남자니?”
“같이 고시 공부 하는 사람.”
“같이 공부를 한다고 남자, 여자가 같은 방을 쓸 필요는 없잖아.”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녀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이니 나름 이유가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다가도 다음날엔 배신감이 몰려왔고 길거리에서도 울컥했다. 당시 한옥을 짓는 목수 일에 빠져 그녀에게 소홀했던 나 자신도 미웠다. 그녀는 자신을 놔 달라고 했다. 만약 선택을 한다면 그 남자를 택하겠다고도 했다. 질투심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녀를 떠날 수도, 그 사람을 버리고 나를 택하라는 요구도 할 수 없었다. 억지로 선택을 강요하는 게 사랑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내가 선택받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눈치를 챘으면서도 3개월은 묻지 못했고, 그녀가 동거한다는 대답을 한 뒤에는 쉽게 헤어질 수 없어 3개월이 흘렀다. 그녀는 나와 낮을, 그 남자와 밤을 보냈다. 우리 셋은 기묘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깨뜨리지 못했다.
목수 일에 빠져 소홀한 사이 애인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
나와 낮을, 그와 밤을 보냈다
그런데도 그녀를 놓지 못했다
그 남자가 보고 싶다고 해서
나가봤더니 선해 보이는 인상
그가 친하게 지내고 싶단다
몇차례 술도 먹고 당구도 쳤다 비록 다른 남자와 동거를 했지만, 그녀에게는 환한 매력이 있었다. 1년 전 소개팅으로 만나 서로를 알아가던 그녀와 나는 금세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는 얼굴이나 목소리가 조금 중성적이었는데 작은 벌레 하나도 쉽게 죽이지 못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소중하다면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조잘대는 그녀가 마냥 좋았다. 그녀와 사귀면서도 우린 자주 만나지 못했다. 나는 전통 건축물의 매력에 빠져 지방의 한 산에서 목수로 지내며 한옥을 짓고 있었다. 한달에 두세 번, 서울에 오면 그녀를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가 이상했다. 데이트가 끝나면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는데 그게 싫다고 했다. 그녀가 나와 헤어져 발걸음을 돌리는 방향도 집 쪽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기분 나빠할까 봐, 추측이 사실로 확인될까 봐. 마음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했다. 어느 날 밤,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참고 있던 질문을 던지고 만 것이다. 그녀의 동거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후에도 우리는 데이트를 이어갔다.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애써 삼각관계를 입에 올리지 않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고, 말을 하다가도 맥락 없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때로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고 그녀도 내게 충실했다. 그녀를 만지면서도 슬픈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온전히 내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데이트를 하다가도 해가 떨어지면 그녀를 보내줬다. 오후 6시가 되면 그 남자에게 보내줘야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게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를 통해 그 남자가 나를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녀의 집 근처 커피숍에서 그 남자를 처음 만났다. 수없이 상상만 했던 그 남자, 나보다 못나기를 바라던 그가 커피숍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선한 얼굴이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니 당신이 물러났으면 해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당신도, 나도 그녀를 사랑한 거잖습니까. 당신이 그녀를 사랑하듯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사랑은 그리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순간 그 남자의 얼굴에서 당황한 표정이 스쳐갔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서로 그녀에게 애인이 있는 줄 모르고 사랑을 시작했고, 사랑한 죄밖에 없는 피해자였다. 그 남자는 내게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도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너 차례 술을 마시고 당구를 쳤다. 만나 보니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남을 배려할 줄 알았고, 이 남자라면 그녀에게 잘해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그와 더 친밀하다는 묘한 질투심이 꺼지지 않았다. 말로 설명할 길 없는 복잡한 감정들, 한 여자를 두고 우정과 질투를 오가는 관계가 마냥 편할 리 없었다. 그녀는 그가 무척이나 괴로워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들이 동거하는 집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집에 들어서자 초라한 방에 나란히 놓인 책상 두 개가 보였다. 두 사람은 집주인이었고 나는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둘은 부부 같았다. 맥주 몇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눴다. 삼각관계라는 본질을 피해 도망친 말들의 향연에는 쓸데없는 잡담만 가득했다. 그들은 예의상 “자고 가라”고 했지만 거절하고 일어섰다. 그날, 그 집을 나와 골목길을 걸으며 한순간에 마음 정리가 됐다. 마음이 환해지고 갈등이 떠나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지금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 없는 감정이었다. 다음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떠날게. 마음 정리했어.” 그녀는 당황하는 것, 놀라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쉬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화를 달라고 했지만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이별했다. 친구들은 위로한다며 그녀를 나쁜 년이라 욕했지만 함부로 말하지 말라며 되레 화를 냈다. 내 여자, 사랑했던 그녀를 욕하는 게 싫었다. 벌레 하나 못 죽이는 그녀니까, 그 남자에게서 느껴진 연민과 사랑의 감정도 죽이지 못했으리라. 그들과 헤어지고 약 1년이 지났을 때, 내가 사는 동네 책방에서 두 사람이 있는 걸 우연히 봤다. 그들은 고시 책을 고르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잠시 스쳐갔지만 요동치진 않았다. 가볍게 인사하고 우린 지나쳤다. 그 남자, 그 여자, 또 다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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