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요판] 연애
공대 아름이
▶ ‘공대 아름이’는 여성들의 로망입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소수의 여성들이 관심과 애정을 독차지하고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제일 잘생기고 멋진 남자를 남자친구로 고르는 환상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공대 아름이’의 진실일까요? 실은 그 삶이 우정과 연애감정 사이의 괴로운 줄타기였다는 어느 아름이의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남녀 사이에 우정이 가능한지를 아픈 연애로 공부한 그는 결국 ‘애교의 신’이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연애면은 2주 뒤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남자 젤 많은 과요!” 고3 담임이 “너 어디 학과 쓸래?”라고 말했을 때 일초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소리다. 여중 여고 시절이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 후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있다. “오! 공대 아름이였겠네?” 이제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아름이의 끔찍한 비극이다.
담임의 선견지명으로 나는 100여명 정원에 여자가 4명인 과를 오게 되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될수록 많은 남자친구들을 만들어야겠다고! 처음엔 쉽지 않았다.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오리엔테이션 날, 나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다. 쑥스럽기 때문이었다. 남자의 팔 핏줄마저 신기해 가슴이 콩콩거렸다.
여중·여고 시절 지겨웠던 나 대학은 남자가 젤 많은 과로
100여명 정원에 여자는 4명
남친이 넘치리라 두근두근 ‘여성적 성격 최대한 감추며
최대한 남자처럼 껄껄대자’
그러다 달큰하게 다리를 꼬자
A와 B는 적응을 못하고… 몇 번의 술 모임이 지나간 다음 나는 점점 남자아이들을 대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은밀하고도 섬세한 여성적 성격을 최대한 감추며 남자처럼 껄껄대라! 남자들에 둘러싸여 수업을 들을 무렵, 곧 내겐 삼총사라 불리는 친한 친구가 생겼다.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처럼 용맹하게 학내를 질주하고 다녔다.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면서 세상에 던져진 외로움을 서로 달랬다. 애인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 시절이었다. 잠깐! 여기서 두 녀석(A, B)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A는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경상도 사나이였다. 활발하고 개그감각이 좋아 과대표를 맡던 녀석이었다. B는 유약하고 섬세했다. 자신의 미래를 언제나 걱정하고, 우울한 트립합을 즐겨 들었다. 사랑은 느닷없게 찾아왔다. A와 사랑에 빠진 건, 스무살 여름이었다. 하루는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겼을 때였다. 눈을 떠보니 벤치에 누워 있었고 A가 옆에 있는 게 아닌가! A는 나의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업고 벤치까지 온 것이었다. 그렇게 첫사랑이 시작됐다. A는 인기남이었다. 매일같이 여대 학생들과 미팅을 했다. 그의 휴대폰은 여학생들의 문자로 가득했다. A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지만 평소처럼 그를 대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놈! 인마!” 이런 식의 추임새를 넣어서 말이다. 하지만 강의실에서나 하굣길에서나 그의 뒷모습을 수줍게 쳐다보기 부지기수였다. 남자만 득실한 곳에서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2년 후, 마치 마법처럼 나는 그와 교제할 수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그건, 사실 단순 해프닝이었다. 내가 밴드 멤버로 홍대 클럽에서 공연할 무렵, 그도 관중으로 왔다. 처음으로 나는 짧은 치마도 사 입고 화장을 짙게 했음은 물론이다. 뒤풀이 자리에서 웬일인지 그는 내게 키스를 했다.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곤란해했다. 이를테면 원래 그를 주먹다짐으로 대했는데, 이제는 달큰하게 다리를 배배 꼬며 수줍어하자 적응을 못했다. 어색해하던 그는 “네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아”라는 말을 문자로 남기며 사라졌다.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과 <논스톱>에서 보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종적을 감췄다. 강의실에 나가지 않았다. 친구조차 될 수 없었고 또 첫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아픔에 똑바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매일같이 허공을 바라보며 처지를 비관했다. 남자만 득실한 과에서 여자처럼 굴려고 하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남자를 능가하는 거친 내 캐릭터가 미웠다. 예전처럼 나를 남자로 대하는 친구들의 말에 마음이 아려왔다. 사실 나도 한없이 수줍은 여자아이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B가 다가왔다. B는 당시 군대에 있었다. 2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고 사흘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A와의 소식을 고백하며 “남녀 사이에 친구란 없는 것 같아. 너랑도 거리를 유지해야 할 듯해”라 거듭 말했지만 B는 단념하지 않았다. 무너진 내 마음을 B 특유의 섬세함으로 어루만져줬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고민들, 그리고 자괴감들을 B에게 토로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갔다. 사실, A보다 B와 속내를 더 나누던 나였다. A와의 상처를 극복할 무렵 B는 제대를 했고, 우리는 애인이 되기로 약속했다. 친구들이 “너 B랑 아무 감정 없어?”라고 물었을 때 항상 “B와 무인도에 발가벗기고 눕혀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우린 완전 친구거든!”이라고 대답한 나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우정은 짙어졌고 결국 한 단계를 도약해야만 하는 사랑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또 삐걱대고 말았다. B가 A처럼 굴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방어적 태도, 집착,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친구일 땐 모든 걸 받아줬던 B도 결국 점점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B 또한 방황의 시기였다. 나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또다시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노래방에서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를 불러댔다. 삼총사의 완전한 해체였다. 지금은 A와는 가끔 안부를 묻곤 하나 B와는 묻지 않는다. A에겐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스파크에서 시작된 사랑이었고 식은 지 오래됐다. B는 좀 달랐다. 원망, 그리움, 애증이 섞여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우정, 그것도 매우 인간적인 우정에서 시작한 사랑은 위험하다. 스파크는 꺼지면 그만이지만, 우정은 꺼도 꺼도 꺼지지 않는 퇴적물과 같다. 삼총사의 비극. 공대 아름이는 이토록 쓰라리다. 이후 나는 학내의 득실한 남자들을 건성으로 대하기 시작하고야 말았다. 깊은 우정을 철저히 차단했다. 현재의 나는 남자친구에게 ‘애교의 신’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하지만 가끔 그리울 때도 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청춘의 고민을 내뱉고 꾸밈없고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낸 시절 말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으쓱거리며 길가를 행보하는 아름이들을 보며 이젠 쓴웃음을 짓는, 옛 아름이의 고백이었다. 사랑에 슬피 우는 공대 출신 여성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