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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음악이 있는 밀림의 밤을 보내며 생각한다. 그 자리에 고정된 채 나를 둘러싼 밖의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일상이라면, 탐험이란 오랜 시간 익숙해진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식을 확장하는 어떤 경험이다. 일상과 탐험, 두 시간의 합이 내 삶의 무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림 김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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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긴팔원숭이박사 김산하의 탐험
<10> 정글과 문명
인간은 문명의 품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생활하기 힘들지만
야생의 기운을 끝없이 갈구한다
자연과 문명의 양다리가
인간으로서의 운명은 아닐까
도시 옷 입고 손목시계 차고
2주 만에 한번씩 읍내 나가
카페에 앉아 바라보는 숲
내 정체성은 원시적 자연과
문명 세계 사이를 진동하고 있다
딱 이맘때쯤이었다. 한 2년 전 어느 운치 있는 가을날,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황금빛 소식으로 포근히 덮어버린 서울의 어느 길을 나는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떨어지는 잎사귀들의 섬세한 낙하 궤적을 눈으로 따라가며, 공기 속에 출렁이는 그 투명한 운율에 보폭을 맞춰보고 있었다. 나는 관찰하고 있지 않았다. 난 그저 음미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밀림을 탐험하면서 몸에 배어버렸던 버릇들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상태였다. 고국에 돌아온 지금도 난 가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라도 나면 마치 어디선가 야생동물이 튀어나올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수풀 속의 움직임에 유난히 민감한 것도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는 탐험의 ‘추적 모드’를 잠시 꺼두는 법도 알고 있었다. 뭔가를 포착하려 하지 않고, 그저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 오늘이 그랬다.
현대인에게 탐험은 사치일까
문득 꺼내본 전화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난 심각한 전화 진동 불감증이 있는 사람이다. 어찌나 그 떨림이 안 느껴지는지, 거의 대부분 못 받은 전화를 다시 거는 데에 대부분의 전화비가 나간다. 물론 절대로 벨소리를 켜놓는 일은 없다. 웅얼거리는 자장가와 같은 세상의 자연스러운 소리 경관을 거칠게 찢듯이 관통해버리는 그 맥락 없는 인공음을 난 참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번호의 장본인은 강연 기획자였다. 내가 강사로 초청된 강연의 제목은 ‘탐험은 사치가 아니다’라는 시리즈로서, 6명의 한국 과학자 각각의 지구 탐사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으로 기획된 것이다. “탐험은 사치가 아니다.” 이 제목이 나의 뇌리에 맴돌았다. 그러고는 기억의 전당의 문이 활짝 젖혀지더니, 주마등의 행렬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빛은 밤새 끊이지 않고 내 의식의 창문가를 스쳐 지나갔다.
현대인에게 탐험이란 사치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순간 깨달았다. 그래서 굳이 사치가 아니라는 변명부터 하면서 얘기를 꺼내야 하는구나. 주어진 일과 과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현실인데, 무슨 미지의 세계를 전제로 한 탐험이라니? 꿈들 깨십시오! 있는 휴가 다 긁어모아서 어디 관광지 한 번 다녀오는 것도 가능할까 말까 하는 판에. 남들은 매일 뼈 빠지게 일할 때 팔자 좋게 모험을 생활로 한다는 것은, 명품을 위아래로 걸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사치처럼 보일 공산이 있었던 것이다. 강사진을 살펴보니 우주, 해양, 심해, 극지를 누빈 연구자들, 심지어는 공룡 과학자도 있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진 어린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환상의 드림팀이었다. 나는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를 만나기 위해, 밀림을 누빈 탐험가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구성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탐험의 대변인’을 맡게 되었다. 삶 바깥으로 완전히 나가는 삶, 그것이 왜 더 삶다운지를 말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밀림에 발도 들여놔보지 못한 사람에게 온갖 이국적인 경험으로 가득 찬 이야기보따리를 보란 듯이 풀어놓기란 쉽다. 하지만 귀 기울이는 자를 압도하려는 목적을 가진 무용담은, 화자와 청중 간의 거리감에 의존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소통에 실패한다. 먼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우리 중 누구나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탄생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 대화의 시간은 사람 마음의 한 부분을 작동하는 데 쓰인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서 단편적인 정보가 고유한 가치로 변신하는 순간. 이를 진정으로 바라지 않는다면 밀림 속을 걷고 뛰며 야생동물을 쫓던 내 삶을 이토록 길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으리라.
현실 속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먼 미지의 자연이 신비로운 것은 우리 모두가 실은 양서류이기 때문이다. 물과 뭍 모두를 드나들어야 하는 개구리처럼, 인공과 자연이라는 이 두 세계를 고향으로 둔 생명체들이다. 물과 에너지, 그리고 식량을 공급받는 문명의 품을 벗어나서는 하루도 생활하기 힘들다. 동시에 녹색 빛으로 안구를 정화해야 하고 야생의 기운을 갈구한다. 한쪽에만 몸을 깊이 담갔다간 반쪽짜리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열탕과 냉탕을 왕복하며 체온을 조절하듯, 문명과 자연을 적절히 버무리려 한다. 한쪽 세계에 완전히 안착한 이들도 있다. 합성소재로만 된 주거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도 있고, 아직도 이파리로 적당히 가리고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양쪽에 두 다리를 걸치고 산다. 이 양다리 자세가 때로는 힘들지만, 인간으로서의 운명이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인공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 사이의 인터페이스에 서식하는 존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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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했던 숲을 경작해 만든 땅을 보면 서글픔이 밀려 오지만,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았던 밀림이었다면 연구자인 내가 머물 수 있었을까. 자연 앞에 인간은 모순의 존재다. 김산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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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 보며 마신 시원한 맥주 한잔
내가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고 있는 이곳 인도네시아의 할리문 국립공원은 보호지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나무가 없는 곳들이 있다. 울창한 밀림 대신 동글동글하게 생긴 키 작은 식물들이 옹기종기 심어져 있다. 바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홍차 밭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일종의 특수 농경지로서 그대로 편입된 것이다. 한 치 앞까지만 시야가 미치는 조밀한 정글 안을 누비다가 어느덧 차밭과 맞닿은 경계에 다다르면, 갑자기 펼쳐진 트인 공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때 울창했던 숲이 이런 단일품종의 경작지로 전락해버린 역사를 생각하면 사실 서글프다. 역설적이게도, 밀림에 이 정도로 인접한 차밭이 있기에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아예 개발이 되었거나 대규모 촌락이 조성되었다면 밀림 자체가 온전치 않았을 것이다. 아예 아무도 살지 않는 그야말로 처녀림이었다면, 나와 같은 연구자가 긴 시간을 머물며 먹고, 자고,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텐트와 식량을 구비해서 얼마 동안 탐사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긴팔원숭이가 나의 스토킹을 허용하는 수준까지 따라다니고, 이를 통해 그들의 행동 및 생태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적당한 정도의 문명이 흘러들어와 기본적인 섭생이 가능하고, 적당히 불편한 비포장도로가 꾸불꾸불 놓여 있어 꼭 필요한 물자와 교통만이 왕래하고, 적당한 종류의 인간 활동이 벌어지고 있어 숲과 공존할 수 있어, 그래서 여기에 나의 있음이 가능하다.
오늘은 정해진 일과를 제쳐두고 모두가 노가다에 동원되는 날이다. 우리 집을 포함한 집 몇 채의 전기를 공급하는 물레방아가 고장이 난 것이다. 강수량이 적은 건기에는 물이 부족해서 전기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강수량이 많은 우기에는 넘쳐나는 물의 세찬 흐름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원인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수압을 이기지 못해 바퀴의 한쪽 고정 틀이 풀린 모양이었다. 현장에 남자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그렇듯, 담배연기와 구수한 농담 사이로 보수작업은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숲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물길을 조금 조정해서 소형 수력발전기를 돌릴 만한 무게와 낙차를 발생시키는 것이 열쇠이다. 이 정도의 장치에 가구 한 3~4채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에너지 공동 운명체로서 생활한다. 마을 사람들이 쓰는 거라고는 고작 약간의 텔레비전 시청과 어쩌다 트는 오디오이다. 전압이 불안정한데다 안테나 수신이 잘 안돼서 이런 전자기기는 거의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 컴퓨터 작업으로 전기를 쓰는 사람은 마을 전체에서 나 혼자이다. 보통 낮에 충전해서 밤에는 배터리로 사용해야 주민들의 야간조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노트북에 표시되는 잔여 건전지량은 그래서 그야말로 소중한, 유한한 자원이다.
숲에 바짝 붙어 생활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인프라’는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처음에는 이 특별한 공간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털보 수컷이 가장으로 있는 B그룹을 찾아 나선 어느 목요일 날,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녀석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영역의 넓이가 약 35헥타르 정도가 되는 퍽이나 넓은 지역을 두차례에 걸쳐 샅샅이 훑었지만 털보와 그의 마누라를 찾는 데에는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두번째 수색이 끝난 곳은 우연히도 우리 마을과 조금 떨어진 다른 마을의 도로변과 가까운 곳이었다. 녀석들의 영역 가장 가장자리라 할 수 있는 이곳의 구릉지에 선 한그루 무화과나무까지 헛되이 살펴보고 나자 우리는 맥이 탁 풀렸다.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은 꽝이구먼. 예전에 긴팔원숭이들을 한창 추적할 때 워낙 허망한 실패를 많이 겪어서 이젠 좀 단련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몸은 피곤했고 더이상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할 마음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마주친 아리스(프로젝트의 수석 연구보조원)의 두 눈이 이상하게 초롱초롱했다. “저기, 오당 아저씨네로 안 갈래?” 오당은 바로 그 도로변에 가게를 가진 양반의 이름인데, 얘기인즉슨 유일하게 동네에서 맥주를 파는 곳인데다가 전망이 기가 막힌 곳에 손님들이 앉을 수 있게끔 대나무 의자와 상까지 구비해놓은 위인이다. 이게 웬 떡인가? 몸은 땀에 절고 장화 속의 발은 거의 부패하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오아시스로 뛰어들었다. 긴팔원숭이 세상에서 걸어 나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햇살이 금빛으로 물들이는 차밭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캬~!
정글 남자도 때론 패션지를 보고 싶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이곳 할리문 산자락에 사는 우리라고 다를까. 나까지 포함해서 장정 넷이나 있는 긴팔원숭이 연구팀의 식량조달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작은 간식거리와 통조림 정도는 살 수 있지만 제대로 장을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약 2~3주 간격으로 우리는 숲을 등지고 잠시 문명으로 하산하곤 했다. 보통 주말을 껴서 ‘읍내 나들이’ 일정을 잡았는데, 한참 동안 손도 안 댄 ‘도시 옷’을 만지면 기분부터 묘하다. 진흙 바닥에 뒹구는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옷을 입는다는 사실이 약간은 신기한 그런 기분. 오랜만에 꺼낸 손목시계의 가죽 줄엔 늘 곰팡이가 허옇게 피어 있어 닦아 없애야 했다. 휘날리는 야자나무처럼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던 머리도 좀 매만지고, 밀림 세상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던 돈도 챙겨 간다. 그리고 음악도 빼놓지 않는다. 맨몸으로 접하는 대자연의 위용과 아름다움이 가장 원천적인 감동을 주지만, 때로는 눈앞에 펼쳐진 절경과 잘 고른 배경음악의 절묘한 조화가 정녕 인간만의 깊은 예술혼을 자극한다. 일렁이는 밀림의 녹색 향연 속을 달리며 듣기에 좋은 음악으로서 나는 모비의 ‘포슬린’(Porcelain), 루시드 폴의 ‘물이 되는 꿈’, 그리고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모든 작품을 추천한다.
도시에서 머무는 시간은 보통 고작 이틀, 아무리 길어도 사흘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현금을 인출하고, 크게 한 차례 장을 보고, 늘 고장 나는 자동차를 수리한다. 볼일이 다 끝나고 내일 아침이면 숲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남겨둔 저녁시간, 나는 단골 카페로 발길을 돌린다. 이름하여 ‘살락 선셋’(Salak Sunset)이란 이곳에선, 내가 사는 국립공원이 안개에 싸인 채 저만치 보인다. 경치가 끝내주는 자리에 앉아 잠시 떠나온 저 숲을 관조하노라면, 원시적 자연과 문명 세계 사이를 진동하는 나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석양과 야자나무, 칼새와 바람의 조화가 완벽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문득 문학을 하는 이유를, 작품을 창조하는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세상에 속하지만 동시에 세상 밖으로 삐져나와 버린, 인간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숲속 생활을 몇 주간 지탱해줄 식량과 이를 요리하는 데 쓰일 가스통을 싣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한번씩 도시에 갔다 올 때마다, 생존에 필수적이진 않아도 삶에 필요한 그런 물건들도 조금씩 딸려 온다. 누구는 새 모자, 누구는 새 티셔츠를 각자의 짐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해적판 음악 시디(CD)나 헤어 왁스, 라이터 같은 물건도 종종 공급된다. 나는 주로 읽을거리를 장만하는 쪽을 택했다. 수도인 자카르타까지 갈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양질의 외서를 구입해 우리 집의 도서관을 한권씩 늘리는 재미를 즐겼다. 인간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잘 달래주는 매체는 단연 잡지이다. 나는 남성 잡지 <지큐>(GQ)를 한두권 사 와서 1년이 넘도록 쪼개서 읽곤 했다. 넥타이를 혁대에 닿을락 말락 하게 매야 한다든가, 양말 없이 구두를 신으라든가 하는 패션 기사를 읽고 있으면, 거의 외계 세상에 대한 얘기처럼 정신이 환기되었다.
고립감과 외로움이 있는 생활이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가 있었다. 도시든 정글이든, 사실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일로 인해 결성된 팀이었지만 우린 금세 가족이 되었다. 허전함과 무료함은 어느 세계에서나 없을 순 없었고, 뭔가 쌓였다 싶으면 우리는 우리만의 잔치를 열어 모든 걸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동네 닭 중 가장 시끄러운 놈을 잡고, 마침 손님이 있으면 누구든 초대했다. 바나나 잎사귀를 접시 삼아 손으로 밥을 집어 먹으며, 저물어가는 해 속으로 모든 근심걱정을 연소시켰다. 그러다 보면 내일이, 다시금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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