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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김 의원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경선에서 진 것 때문에) ‘의정활동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든가 ‘청년정치의 한계가 저런 건가’ 하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죄송스럽다”며 “청년정치의 한계가 아니라 온전하게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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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국회의원 김광진
정치는 공학이 아니다. 정치는 예술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 감정이입하고 그 아픔과 소망에 깊이 공명하면서 조화와 역동성, 균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집체예술이다.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오직 이기기 위해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이겨야 하는지, 지더라도 염치와 품격을 잃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 되묻지 않고 오로지 공학적 계산으로 승리만 추구한다. 자의식과 성찰이 없는 정치인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가가 아니라 영혼 없는 기계음을 단순 반복하는 로봇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적이다.
때론 망설이고 두려워하면서, 자괴감과 외로움에 부대끼지만, 지더라도 꼼수 없이 멋진 승부를 펼치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할 줄 아는 게 인간이다. 우리는 그런 인간이 하는, 인간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 눈앞의 승패를 넘어서 인간에게 깊은 떨림과 감동을 선사할 때 정치는 예술이 된다. 가슴을 울리는 정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던가!
자고 새면 쏟아져 들어오는 입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는 미세먼지처럼 집요하고 성가시다. ‘격려와 성원에 감사하다’는데, 격려도 성원도 보낸 적 없는 사람들한테 왜 이런 문자를 살포하는지 모르겠다. 대량 복제된 문안은 건조하고 단조롭다. ‘준비된 후보, 행복한 ××시를 만들겠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기호 ○번과 함께!’ 천편일률적인 인사말은 그 마무리도 비슷하다. ‘…불편을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래! 정~말 불편하다!’고 크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어느 일요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광진 국회의원입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을 때도 처음엔 그랬다. 반사적으로 ‘삭제’ 아이콘을 더듬다가 눈에 들어온 메시지.
“노관규 후보가 새누리당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할 수 있도록 전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저를 응원해주셨던 지지자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 믿습니다. 다시 시작입니다. 삶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라는 신념을 어깨에 이고 ‘재선을 넘어 대선으로’ 가는 길로 다시 걸어가겠습니다.”(2016년 3월20일 김광진 문자메시지 중에서)
묘하게도 그의 문자에선 눈물방울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못 지웠다. 전남 순천의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노관규 후보에게 패한 뒤 김광진(35) 의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4년 전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 후보 공모로 뽑힌 19대 최연소 국회의원.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려는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나서 정치에 시큰둥한 사람들의 시선을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아낸 인물. 그는 탈락했지만 그의 고별인사는 사뭇 감동적이었다.
그의 임기는 5월29일로 끝난다. 김광진이 지난 4년간 경험한 의회 안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대한민국 정당에 아직 희망은 남아 있을까? 지난달 2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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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놓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 앞에 서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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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
두 달 뒤 임기 끝나는 김광진
그의 문자에선 눈물이 반짝였다
그가 경험한 의회는 어땠을까 ‘뭐 먹고 살 거냐’ 물으면
‘홈쇼핑 할 거다’ 농담
첫 대표발의한 법이
국회의원 연금폐지법
스스로 숙제 걸머진 셈 어떤 고양이도 쥐를 대변하지 못한다 김광진은 순천 사람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진 일주일 이상 서울에 머물러본 적이 없을 만큼 순천 토박이로 살았다. 순천고 입학 후 미대 입학을 꿈꿨지만 “미대를 가기엔 공부를 너무 잘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술을 포기한 후부턴 글 쓰는 데 푹 빠져서 백일장이 열리는 곳마다 나가 수상도 여러 차례 했다. 문예특기자로 고려대 문예창작과에 합격했지만, 전액 장학금에 해외 유학까지 약속한 순천대를 택했다. -김광진에게 고향 순천은 어떤 의미인가요? “고향을 얘기하기엔 제 나이가 아직 어려서….(웃음) 정치인으로서 왜 순천을 택했는지에 대해선 답할 수 있어요. 제가 유치원부터 초·중·고, 대학, 대학원, 군대까지 다 순천에서 나왔거든요. 국립순천대가 개교 81주년 됐는데 제가 순천대 출신 첫번째 의원입니다. 이게 대한민국 정치의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목소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아서 대의정치를 하는 건데 막상 사람들이 투표할 때는 ‘서울에서 유명 대학 나온 놈이 낫지’ ‘어디서 검사 하고 장관 하던 사람이 낫지’ 하는 거죠. 어떤 고양이도 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게 아니거든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조선시대부터 있던 얘긴데 이 급변기에 20~30년을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중·고등학교 겨우 순천에서 나오고는 ‘제가 순천의 아들입니다’ 하고 출마하잖아요. 지역민의 삶과 같이하는 정치란 어떤 걸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역민들하고 일상에서 부대끼면서 목소리를 내줄 사람,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해야 되는데요. “대의민주주의는 대표되지 못한 자들의 대표를 뽑는 거예요. 근데 대표되지 못한 분들의 얘기가 정확히 대변되고 있냐? 이게 문제죠. 대한민국 청년층이 20·30대 합쳐서 인구의 30%입니다. 국가를 운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국회에 이 30%를 대표하는 사람이 몇 %나 될까요? 제가 서른여섯 살 먹고 ‘최연소 의원’이에요. 20대는 아예 한 명도 없고. 이게 정상적인 대의제입니까? 직업군도 그렇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300~400명 중에 변호사가 몇 명이나 되죠? 한 명 있을까 말까 해요. 근데 300명 의원 중에 변호사가 1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러니 국회에서 하는 행위가 실제 ‘내 삶’을 바꾸지 못하는 거죠. 우리가 (정치권) 물갈이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람만 그 계층 안에서 바꾸는 걸로는 해결이 안 됩니다.” 그는 <7분의 전투>란 책에서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정치인은 다음 세대를 준비한다’는 격언을 인용했다. ‘정치적 약자’인 청년이 정치적 기득권과 경제적 여유를 가진 기성 정치인과 경쟁해서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공천제도를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선정 과정에서 청년대표는 안정권 밖으로 밀려났다. -<7분의 전투>란 책이 2013년에 나오고 절판된 상태라 구하기 어렵더군요. 선거 앞두고 왜 새 책을 내지 않으셨죠? 선거 무렵이면 정치인마다 책 내고 출판기념회 하던데. “출판기념회 하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원래 책 한 권 낼 원고를 준비해놨는데 저희 캠프에서 ‘선거 앞두고 안 하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나서….” -참 특이한 의원실이네요. 왜죠? “처음 (선거에) 나오는 분이라면 도움받을 통로가 없으니까 하는 것도 괜찮은데, 저처럼 현역 의원이 출판기념회 한다고 하면 유관기관에서 많이 올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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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의원이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원회관을 찾은 이진순씨와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 뒤로 보이는 것은 김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회 활동 중 군인들로부터 받은, 방문한 부대 마크가 새겨진 ‘코인’들이다. 강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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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살인 내가 최연소의원
이게 정상적인 대의제인가
문민 국방장관 나오고
군인들도 당사자 운동해야” “의정활동 열심히 했지만 패자
돈·조직 없어도 오직
시민의 열망으로 넘고 싶었다
청년정치의 한계 아니다
온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 ‘의정활동 잘해봐야 소용없다’지만… -그간 사병들 처우 문제나 군 인권 문제에 주력해오셨어요. 군대 내 가혹행위로 자살한 경우도 순직 처리하도록 군 인사법을 개정해서, 2015년 <머니투데이>가 선정한 ‘대한민국 최우수법률상’을 타셨습니다. “법안의 반만 통과된 겁니다. 군에서 1년에 150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00명이 자살입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건 그간 의문사한 사병의 유가족을 위해서였는데,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반대해서 과거에 죽은 사망자는 이 법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어요. 마지막 통과시한을 앞두고 유족회에 여쭤봤어요. ‘특별법이 안 돼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냥 멈출까요?’ 하니까 유족회장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한 해 150명이 죽는데, 삼일장으로 쳐도 1년 365일 내내 곡이 끊이지 않는 나랍니다. 징병제 국가에서 오늘은 내 자식이 피해자지만 내일은 또 누군가의 자식이 그렇게 될지 모르는데, 내 자식이 보상 못 받는다고 반대할 순 없습니다. 가서, 김 의원! 이 법을 통과시켜주소!’ 그래서….” 울컥 그의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인 채 그가 천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좀 다른 얘기를 해보죠. 이번에 1기 청년비례대표로 들어온 장하나, 김광진 의원이 모두 공천경쟁에서 밀렸습니다. 흔히 정가에서 떠도는 얘기가 ‘의정활동 잘한다고 재선에 유리한 건 아니다’란 건데, 이게 사실인가요? “국회에서 제일 중요한 회의가 ‘소위원회’ 회의라고들 합니다. 법안소위, 예산소위 이런 데서 중요한 게 많이 결정되거든요. 근데 ‘소위원회 참석 잘하는 사람치고 당선되는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법안 소위 같은 경우도 6시간, 7시간씩 하는데 (취재)카메라 한 번 안 들어오죠. 사람들도 관심이 없고. 국회의원의 역할이 지역 면민대회, 노인 체육대회 축사하러 다니는 건가, 고민될 때가 많았어요.” -의정활동 열심히 하고도 떨어졌으니, 김광진 의원은 승자입니까? 패자입니까? “선거에서 지면 패자죠.(웃음) 그런데 후회는 없어요. 미련도 없고. 다만 제가 실패한 것 때문에 ‘의정활동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든가 ‘청년정치의 한계가 저런 건가’라든가 ‘돈 없고, 시의원 끼지 않으면 정치를 못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제가 선거 2.4% 차이로 졌는데 시의원 24명 중 단 한 명도 저희 캠프에 오지 않으셨어요. 돈 쓰지 않고 조직선거하지 않고 시민의 열망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걸 못 해 죄송합니다. 이건 청년정치의 한계가 아니고 온전하게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이세돌의 패배’였던 것처럼, 그는 ‘청년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김광진의 실패’라고 거듭 강조했다. 때로는 패배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라야 이길 수 있다. 이진순· 녹취 김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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