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 소설 <3화>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자연재해가 나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서 동물의 껍질을 본떠 만든 자루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거나 나뭇잎을 온몸에 덮어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재앙이 닥치면 처음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척하지만, 먹을 게 떨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다들 서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산짐승들, 동물들이 제일 위험하다.
하하, 아하, 크크크. 역시 자기들은 신인류야.
J는 또 자기 자신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인류라니. 이건 뭐지.
액체를 많이 흘려 색이 검게 변한 발밑의 카펫과 K 이사 등 뒤에서 썩고 있는 화분을 쳐다보기도 했지만, J는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늘 울려대던 휴대폰조차도 그 순간엔 울리지 않았다.
인터뷰 녹취 테이프에서 K 이사가 한 얘기.
그때 우리는 환경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다 불행했어요. 아니, 일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순탄치 않았어요. 건강도 좋지 않았고. 우리 중 한 사람은 암에 걸렸고 한 사람은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낳았어. 우리가 세상을 걱정한답시고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고 술을 자주 마셨기 때문일까? 정말,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그게 다 왜 그런지 알아요?
암은 환경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걸린답니다.
나는 그게 다 최루탄 때문이라고 생각해. 우린 그때 모두 신촌에 살면서 신촌과 신촌 인근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어. 온통 하얀 하늘을 한번 생각해봐. 봄도 없었고 가을도 없었어. 상징적인 의미의 봄 얘기가 아니고 실제의 봄, 계절의 여왕 봄, 그런 게 없었어. 새가 없었다고. 날아다니는 새가 없었어.
그대여, 그대여, 버스커 버스커, 벚꽃이여.
얼마 전에 우리 셋이 아현동에 갔어요. 세상에! 우리가 데모할 때마다 숨었던 그 북아현동 시장 골목부터 이대 언덕바지 위까지 깨끗이 다 갈아엎은 걸 봤어. 허탈했어. 도시는 그렇게 새로 지어지면서 끝까지 죽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서글퍼지기도 하고. 데모하다가 그 시장 골목골목으로 몸을 숨겼던 사람들이 다 죽어 버리면 누가 그 길을 기억하겠어. 그러나 다 죽겠지. 우린 그런 투어를 하길 좋아해. 최루탄 격전지 투어.
미세먼지 차단하는 호흡기 파는 사이트 많은데…….
돈이 없어서 그렇지, 최루탄 정도는 쉽게 차단해주는 기구를 파는 곳을 J는 여러 군데 알고 있었다. K 이사는 혼자서 잭슨 폴록에 관한 것인지, 잭슨 폴록과 관계된 자신의 얘기인지 모를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아, 하는 소리를 뱉고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더는 머리를 들지 않았다.
자는 거야? 뭐야, 자는 거잖아.
J는 당황했다. 믿을 수 없지만, 그녀는 자고 있었다. 한 십오 분쯤을 기다렸는데 정수리 부근이 점점 툭툭 떨어지며 고개를 쳐들지 않았다. J는 소파로 다가가 K 이사의 몸을 한 손으로 눌러 소파 위에 눕혔고 등받이에 걸려 있던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선배들한테 물어봐야 하나. 메모를 남겨두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쩌나. 무엇보다 이 집 안 꼴을 어째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J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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