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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4 09:54 수정 : 2013.07.08 13:51

강영숙 소설 <4화>



집 안은 쓰레기 천지였고 K 이사 외에 살아 있는 것은 흔한 고양이 한 마리, 개 한 마리, 어디서나 잘 크는 서양란 하나 없었다. K 이사 이름 옆에 나란히 붙은 문패에 적힌 또 다른 사람은 죽었거나 이 집에 살지 않는 것 같았다. 가끔이라도 누군가 와서 살림을 도와주거나 한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J는 겨우 난 틈을 이용해 집 안을 돌아다녔다. 손을 대는 곳마다 먼지 무덤에, 썩고 상한 것들 천지였다.

처음엔 그냥 사람이 지나다닐 통로만 마련하자는 생각이었다. 쌓아둔 신문지와 쓰레기가 분명한 것들만 치울 생각이었던 것인데 방이 네 개나 되는 큰 집이고 방마다 빈틈이라고는 없어서, 뭔가를 치운다고 해봐야 그냥 손으로 집어서 옆자리로 다시 옮겨놓는 정도였다. 문제는 냉장고 옆 조리대 부근과 이어진 부엌 뒤 베란다였다. 양동이와 또 다른 양동이, 상자와 또 다른 상자들이 창을 꽉 막고 있었다. 처음에 한숨을 쉬던 J는 어느새 재킷을 벗고 식탁 위에 빈틈을 내느라 애를 썼다. 신문지에 나자빠지거나 의자 모서리에 걸려 바지가 찢어지지는 않았지만, 천벌이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J는 책장을 점령한 미세먼지 덩어리들을 보고 경악했다. 책들은 형체가 희미해져 다시 종이로 돌아갈 것처럼 뿌옇게 색이 바랜 상태였다.

〈라이프〉 지였던 거 같아요. 잭슨 폴록이 셔츠 소매를 걷고 접시를 닦는 사진이 실린 적이 있어요. 그의 파트너 리 크리스너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접시를 닦는 폴록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리도 화가였어. 정말 못생긴 여자였지. 생각해봐요. 리 크리스너는 폴록의 붓질을 봤을 거야. 그런 붓질을 봤으면 좋겠어. 나도 말이야.

〈라이프〉 지고 뭐고, 집 안은 인테리어 업자가 한번 다녀가든지, 청소 용역이 와 다 싣고 가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었고, 소파에 붙은 듯 자고 있는 K 이사는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안 했다.

제가 지금 가야 하는데요.

K 이사는 계속 잤다. J는 두 손과 발가락을 비비며 천장이 곧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집을 지탱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봐요 아줌마, 제가 가야 한다니까요.

K 이사의 자세는 아주 편안해 보였다. J는 휴대폰 카메라로 자고 있는 K 이사의 얼굴을 찍었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런 말이 딱 적당했다.

맛이 갔군. 이 아줌마 맛이 갔어.

2.

이탈리아의 에트나 화산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J는 스피커 음량을 최대로 높였다. 이탈리아의 지진학자들이 출연해 화산 활동의 움직임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화산 활동이 활발해지는 순간의 움직임, 지진 파동이 기록되면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 그 음악이 울리는 순간, 사람들은 지진을 감지하면서 지진 속에 파묻혀 죽게 될지도 몰랐다. 실제로 지진이 나면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지진 파동과 비슷한 현대음악 스타일은 뭘까. J는 거듭, 거듭 상상했다.

아현역에서 내리자마자 K 이사가 말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천막으로 가린 언덕이 모두 붉은색 흙이었다. 인근에 온전히 남아 있는 건 남자학교 하나뿐이었다. J는 천막을 따라 인도를 걷다가 틈이 벌어진 가드 안쪽을 들여다봤다. 붉고 진한 흙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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