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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2 09:55 수정 : 2013.07.17 11:07

강영숙 소설 <10화>



5.

사람들이 얼굴에 붉은 양파 자루를 쓰고 지나다녔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일매일 조금씩 높아졌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이 더위 때문에 많이 죽었던 여름이 있었는데 올여름 더위가 40도 이상일 거라고 했다. J는 늘 머리 한쪽이 무거웠다.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한 엄마가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검사료는 왜 이렇게 비싸니. 자꾸만 목이 마르다. 아버지는 나한테 관심도 없다. J는 인터넷을 뒤져 잭슨 폴록의 영상을 구하느라 엄마 얘기는 듣지도 않았다.

온실처럼 더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세 개의 체인에 의해 연결되어 있던 기다란 액자가 벽에서 떨어져 내려 깨졌다. 초록색 소파 위에 모로 누워 등받이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잠든 K 이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J는 가져간 노트북 전원을 켜고 어렵게 구한 영상을 작동시켰다. 그건 잭슨 폴록이 담배를 입에 물고 캔버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붓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장면이었다. 영화에서는 캔버스를 벽에 세워놓고 그렸지만 실제로는 바닥에 놓고 그렸다. 아무런 배경음악도 없는 그 장면을 K 이사가 보게 해야 했다.

J는 집 안을 둘러봤다. 그 방에서는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났다. J는 소파 끝으로 가 옆으로 포개진 두 발을 만져 보았다. 물기라고는 없는, 실금 천지인 발바닥이었다. J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K 이사의 발바닥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큼 센 압력으로 발바닥을 눌렀지만, K 이사는 깨어나지 않았다.

이봐요.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요. 이사님처럼 살 수 없어요. 재미도 없고 진지하기만 하고 늘 지겨운 얘기만 하잖아요. 세상은 당신들이 지켜요. 우리한테 떠넘기지 마요.

J는 손을 점점 더 위로 뻗어 흰 광택이 나는 K 이사의 다리 쪽으로 올라갔다. 촉감은 점점 더 건조해졌지만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이봐요. 이사님. 이제 환경문제는 제품이 해결해요. 전처럼 당신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일어나요.

J는 손을 더 뻗어 올라갔다. K의 파자마 자락에서 희고 통통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이 집 안의 어떤 것보다도 끔찍한 냄새를 풍기며 K 이사의 허벅지 위에서 꼬물거렸다. J는 고개를 돌려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폴록이 막 벽에 있던 캔버스를 바닥으로 끌어내는 장면이었다. 그는 그답게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장면은 이제 녹색의 전원으로 바뀌었고 한동안 폴록의 구두와 공업용 페인트 통, 툭툭 떨어지는 붓끝만 보였다. 고개를 돌리면 K 이사가 잠에서 깨어나 그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다. J는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돌릴 수 없었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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