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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테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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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세윤의 재미핥기
혼자 사는 남자가 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를 보고 나 혼자 노래를 듣고 그렇게…. 매우 씨스타적으로 살고 있는 남자가 있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고 그에게도 가족이란 게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늘 혼자다. 하루는 그 남자의 집 앞에 낯선 사내가 어슬렁거린다. 집도 절도 없는 부랑자. 동정 혹은 연민. 남자는 그를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혼자 사는 남자’가 ‘같이 사는 남자’로 탈바꿈하였다. 그때부터 쏟아진다. 의심의 눈초리. 언어의 회초리. 당신 지금 남자랑 사는 거임? 잠도 같이 자는 거임? 둘이 사귀는 거임?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보지만 때마침 샤워 끝내고 나온 부랑자가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걸친 게 하필 여자 옷. 뜨아~. 이제 남자는 마을의 외톨이가 되었다. 그전에도 이미 혼자였지만 혼자 살지 않은 다음부터 더 ‘혼자’가 되었다. 어제는 혼자라서 좀 외로웠는데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서 완벽하게 외로워졌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중인 네덜란드 영화 <마테호른> 이야기다. 혼자 사는 남자는 5년 전에도 있었다. 나 혼자 길을 걷고 나 혼자 티브이를 보고 나 혼자 취해도 보고 그렇게 매일…. 몹시 씨스타적으로 살고 있는 남자가 프랑스에도 있었다. 날 때부터 혼자는 아니었고 한때는 아내라는 사람도 곁에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는 매양 혼자인 남자였다. 하루는 그 남자가 강사로 근무하는 수영장에 낯선 청년이 나타난다. 집도 없고 절은 더더욱 없어 보이는 이민자. 할 줄도 모르는 수영을 해보겠다고 하루 종일 허우적대며 가라앉는 초보자. 동정 혹은 연민. 역시 이 남자도 그 청년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재운다. 겨우 며칠 동안이었지만 ‘혼자 사는 남자’가 아니라 ‘같이 사는 남자’로 살아보았다. 그때부터 쏟아지는 것들이 같다. 경멸의 눈초리. 치켜뜬 눈꼬리. 당신 지금 불법이민자를 숨겨주는 거임? 막 같이 자고 막 그러는 거임? 남자랑? 그것도 열일곱살짜리랑? 그렇게 주인공은 외톨이가 되어간다. 춥고 배고픈 이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이웃들이 그에게 ‘적의’를 품는다. 어제는 혼자라서 외로웠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서 더 외로워진 남자. 하지만 전보다 더 외로워진 덕분에 비로소 다른 이의 외로움을 헤아릴 줄 알게 된 주인공.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때때로 상영중인 프랑스 영화 <웰컴>(2009·사진) 이야기다. <마테호른>의 두 남자는 산으로 간다. 알프스의 험산준봉 마테호른에 같이 오른다. 둘 중 한 사람에겐 꼭 그 산에 올라야 할 이유가 있다. 꼭 산에 오를 이유가 없는 다른 한 사람이 말없이 동행한다. 친구를 혼자인 채로 남겨두지 않는다. <웰컴>의 두 남자는 바다로 간다.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려고 애쓴다. 둘 중 한 사람에겐 꼭 그 바다를 건너야 할 이유가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굳이 바다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함께 헤엄친다. 수영을 가르치고 기운을 북돋는다. 어떻게든 친구를 혼자인 채로 남겨두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런 법이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까지의 불평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다음. “할게요.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결심은 아무나 못한다. ‘누구나 하는’ 말을 딛고 뛰어올라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으로 건너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것은 단순한 등산이 아니다. 편견의 능선을 함께 걷는 여정이다. 손쉬운 수영도 아니다. 차별의 파도를 같이 넘는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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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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