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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3 19:50 수정 : 2013.08.25 10:30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몸]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사람이 모이면 그중 웃긴 사람이 꼭 있다. 의과대학 학생 중에도 웃긴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해부학 실습실에서 틈틈이 위문 공연을 한다. 즉 해부에 지친 동료 학생을 위해서 다음처럼 우스갯소리를 한다. “머리를 해부하니까 머리에 관해서 묻겠다. 머리 감을 때 가장 먼저 감는 것은? 눈이다. 너희는 눈을 뜬 채로 머리 감니?” 다른 조에 가서도 위문 공연을 한다. “밤낮없이 해부하느라 애쓴다. 손을 해부하는구나. 한식과 양식의 다른 점은? 한식은 한 손으로 먹고, 양식은 양손으로 먹는다.” 위문 공연은 꽤 인기가 있고, 따라서 그 학생은 여러 조에서 초대받는다.

내가 다닌 의과대학에서는 그 웃긴 학생을 쾌락부장이라고 불렀다. 오락부장이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면, 쾌락부장은 어른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쾌락부장은 야한 이야기도 잘한다. “너희는 골반, 샅의 생식계통을 해부하는구나. 생식계통을 부지런히 익혀라. 생식계통을 알아야 지성인, 즉 성을 아는 사람이 된다.” “여느 때에 성교육을 잘 받은 학생한테는 생식계통이 상식계통이다. 이미 아는 것을 또 배우니까 쉽지?” “생식계통 실습을 네 글자로 줄이면 성지순례이다.” 이처럼 공부 이야기와 야한 이야기가 뒤섞이는 해부학 실습실은 쾌락부장한테 좋은 일터다.

쾌락부장은 여학생한테도 야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에는 야한 정도를 조절해서 성희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더 야한 이야기를 해 달라고 짓궂게 조르는 여학생도 있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듣기에는 좀 약하다. 더 센 것 없어?” 약삭빠른 쾌락부장은 그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내가 너의 쾌락을 위해서 성희롱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는 없잖니? 나는 구렁텅이에서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 더 꼬이지 마라.”

해부학 선생은 학생끼리의 우스갯소리를 알면서도 막지 않는다. 실습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은 공부 이야기뿐 아니라 우스갯소리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습실에 시신이 있는데, 시신 앞에서 우스갯소리를 해도 되는가? 해도 된다. 시신을 모욕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렇다.

학생은 자기 몸을 기증한 분께 고마움을 잊지 않고 해부한다. 그렇다고 시신을 볼 때마다 슬퍼하지는 않는다. 유가족도 장례를 치른 다음에는, 슬픔을 잊고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그런데 학생이 실습실에서 몇 달 동안 슬퍼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부학 선생은 평생 시신을 봐야 하는데, 그렇다고 평생 우울하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자기 몸을 기증한 분도, 유가족도 학생이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뛰어난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학생은 시신 앞에서 슬퍼하기보다 시신으로부터 어떻게 많이 배울지 따져야 한다. 많이 배우려면 긴장을 조일 줄도 알고, 우스갯소리로 긴장을 풀 줄도 알아야 한다. 실습실에서 슬퍼하기보다는 웃는 것이 낫다.

옛 해부학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선생보다 시신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선생이다. 장기 기증이 몇 환자를 살린다면, 시신 기증은 수백, 수천 환자를 살린다.” 학생이 시신으로부터 많이 배워서 뛰어난 의사가 되라는 말이다.

나는 미국의 해부학 실습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추수감사절이 되자 실습실에서 잔치를 하였다. 학생이 무대를 꾸미고 노래를 부르고 장기 자랑을 하면서 놀았다. 나는 시신 앞에서 노는 것이 낯설었고, 이래도 되는 것인지 의심하였다.

그러나 곧 문제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신에 관한 문화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며, 이것을 존중해야 된다. 미국의 학생도 긴장을 풀어야 시신으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들도 놀면서 시신을 모욕하지 않으며, 해부하면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시신을 모욕하지 않는 범위에서 즐겁게 해부할 수 있고, 쾌락부장이 나서서 우스갯소리를 할 수도 있다. 전세계에서 그렇게 해부하고 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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