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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1 19:45 수정 : 2013.11.03 10:51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언제 어디에서나 모르는 사람은 쳐들어오지 않는다. 아는 사람이 쳐들어온다.

의과대학의 다른 기초의학(생리학, 생화학, 미생물학, 약리학) 선생은 해부학을 잘 알기 때문에, 해부학을 깔보고 쳐들어오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해부학은 죽은 학문입니다.” 왜 죽은 학문인지 친절하게 알려 주기까지 한다. “해부학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은 뚜렷이 다르며, 해부학은 이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해부학이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죽은 학문은 아니다. 차를 고치는 사람은 차의 구조를 먼저 배운다. 기관 덮개를 연 다음에 기관을 꺼내서 하나씩 분해하는데, 이때 차의 시동을 걸 수 없다. 하지만 시동 걸지 않은 차를 분해해서 얻은 지식은 쓸모 있다. 시동 걸면 차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을 해부해서 얻은 지식은 쓸모 있다. 살아 있으면 몸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부학이 죽은 학문이라고 우기는 까닭이 또 있다. “수백년 전에 가르친 해부학과 요즘에 가르치는 해부학이 똑같지 않습니까? 머리뼈는 수백년 전에도 요즘에도 머리뼈일 뿐입니다. 첨단 의학이 잇달아 나오는 요즘, 구닥다리 해부학을 가르칠 필요가 있습니까?”

해부학이 오래된 것은 맞지만, 죽은 학문은 아니다. 수학의 경우, 이미 수백년 전에 밝혀진 것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많이 가르치고 있다. 오래된 수학은 짜임새와 논리를 잘 갖추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해부학도 짜임새와 논리를 잘 갖추었으므로, 의학에 입문하는 학생한테 꼭 가르쳐야 한다. 게다가 해부학은 강의실에서 가르친 내용을 거의 다 실습실에서 확인시킬 수 있다. 이처럼 강의와 실습이 잘 들어맞는 과목은 의학에서 해부학뿐이다. 따라서 해부학 강의와 실습을 통해서 과학스러운 접근 방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그래도 해부학은 바뀌지 않으니까 가르치지 말라면, 나는 이렇게 받아친다. 자주 바뀌는 첨단 의학이야말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또 바뀔지도 모르는데 왜 가르치는가? 의과대학을 졸업한 전공의 또는 대학원 학생한테 가르쳐도 늦지 않다.

죽은 학문이라고 우기는 마지막 말이다. “해부학은 수백년 전에 다 밝혀졌는데, 새롭게 연구할 것이 있습니까?” 해부학이 옛날에 많이 밝혀진 것은 맞지만, 죽은 학문은 아니다. 해부학 선생은 요즘에도 새로운 것을 밝히고 있다. 병원에서 새로운 진단, 치료 방법이 나올 때마다 사람 몸을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하며, 그에 따른 임상해부학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다. 예컨대 컴퓨터단층사진과 자기공명영상이 나온 다음부터, 시신을 절단해서 보는 절단해부학 연구가 발전하였다. 해부학을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의사의 진단, 치료에 도움 줄 수 있다. 실험동물이 아닌 사람을 다루는 연구는 진단, 치료에 직접 도움 주는 것이 장점이다. 첨단 의학이 아니라고 업신여기면 안 된다.

기초의학 선생 중에는 해부학 선생을 짓궂게 흉보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죽은 사람을 다룹니까?” 나는 그 선생을 이렇게 흉본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산 동물을 죽입니까? 실험동물에 관한 윤리를 지킨다고는 하지만.” 그 선생이 보기에는 죽은 사람이 징그럽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산 동물이 훨씬 징그럽다. 자기한테 익숙하지 않으면 징그러운 법이다. 사람이 보기에 벌레가 징그럽듯이, 벌레가 보기에는 사람이 징그러울 것이다. 하여튼 해부학은 죽은 학문이 아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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