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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9 20:06 수정 : 2013.12.01 13:29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의과대학 학생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 오해를 풀어 줘야 직성이 풀린다. “의과대학 학생은 부지런하니까 공부를 찾아서 하죠?” “아니요, 틈만 나면 놉니다. 억지로 시켜야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본성입니다. 의과대학 학생이라고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억지로 공부시키는 방법은 누가 뭐래도 시험이다. 의과대학 학생은 시험을 몹시 두려워하는데, 시험 성적이 나쁘면 학년 낙제를 하기 때문이다. 과목 낙제는 다음 해에 낙제한 과목만 듣는데, 학년 낙제는 다음 해에서 모든 과목을 듣는다. 그래서 과목 낙제는 웃으면서 하고, 학년 낙제는 울면서 한다는 말이 있다. 게다가 학년 낙제를 하면, 비싼 등록금을 모두 또 내야 하고, 의사가 된 다음에 벌 1년 수입이 사라진다. 시험 성적은 돈이다.

시험 성적이 나쁘면 졸업한 다음에 병원의 인기 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인기 과는 다른 과보다 편하게 돈 많이 버는 과를 뜻한다. 역시 시험 성적은 돈이다. 인기 과에서 면접을 비롯한 다른 방법으로도 평가하는데,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 성적만큼 객관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은 고등학교 학생이 일류 대학교의 인기 과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고등학교 학생은 모르는 사람과 겨루는데, 의과대학 학생은 아는 동료와 겨룬다는 것이다. 상대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의과대학에서는 동료가 바로 적이다.

의과대학의 학년 낙제와 상대 평가가 비인간적이라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내가 보기에 더 비인간적인 것은 게으르게 공부해서 나중에 환자를 해치거나 죽이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는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해부학 실습도 억지로 시키려면, 실습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실습 시험은 다음과 같이 치른다. 시신의 어느 구조를 실로 가리킨 다음에 그 구조를 적으라고 문제를 낸다. 시신마다 4개 안팎의 문제를 내니까, 시신이 10구이면 40개 문제를 내게 된다. 더불어 마른뼈를 비롯한 여러 표본을 가지고 20개 문제를 낸다. 학생이 60명이라고 치면, 한 문제에 한 학생씩 세울 수 있다. 학생을 세우고 나서 실습 시험의 시작을 알리면, 학생은 자기 앞에 있는 문제를 푼다. 자기 문제를 잘 보려고 옆 학생과 몸싸움도 한다. 사나운 여학생은 남학생한테 밀리지 않고, 오히려 남학생을 쓰러뜨린다. 30초 지나서 땡 소리가 울리면, 60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다음 문제로 옮겨서 푼다. 학생이 한꺼번에 옮기는 모습은 기계의 톱니가 돌아가는 것 같다. 60문제를 푸는 데 30분 걸리고, 땡 소리는 59번 울린다. 땡 소리 때문에 실습 시험을 땡 시험이라고 부른다.

실습 시험의 며칠 전부터 학생은 해부를 마무리하고, 다른 조에서 해부한 시신을 살핀다. 그러면서 시신마다 구조가 다르게 생긴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때로는 흉을 본다. “이 조는 지저분하게 해부했다. 이따위로 해부하면 다른 조한테 민폐 끼치는 것이라고. 새끼맞섬근(욕처럼 들리는 해부학 용어로 새끼손가락을 구부리고 모을 수 있게 하는 근육)!”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시신을 살피다가 나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 구조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 구조를 문제로 내면 보나 마나 틀릴 텐데.” “좋은 수가 있다. 이 구조를 뜯어서 망가뜨리자. 그러면 문제로 내지 못한다. 하하! 오늘은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다.” 이렇게 망가뜨리는 짓을 나한테 들킬 때가 있다. 나는 주의만 시키고 꾸짖지 않는다.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내가 학생일 때 똑같은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차마 꾸짖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양심을 지키면서 가르친다.

실습 시험 문제로 사진을 넣을 수 있다. 나는 엉뚱하게 의과대학 건물 앞에 있는 동상의 사진을 넣는다. “동상에서 보이는 이 근육의 이름은?” 해부하지 않아도 보이는 근육이니까 표면해부학 문제이다. 학생은 짐작하지 못한 문제를 보고 당황하며, 나중에 동상을 지나칠 때마다 실습 시험을 떠올린다. “내가 이 근육의 이름을 왜 못 맞혔을까? 동상이 꼴 보기 싫다.” 해부학을 되새기니까 학습 효과가 있는 셈이다. 의과대학에서는 동상도 시험 문제, 시청각 교재로 쓸 수 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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