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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4 19:30 수정 : 2014.02.28 21:33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영어 회화를 잘하려면 듣기와 말하기 중에서 무엇을 익혀야 할까? 내가 겪은 바로는 말하기를 익혀야 한다. 나는 옛날에 영어 듣기를 위한 오디오, 비디오 교재로 공부하였는데,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국 사람한테 서툰 영어로 말하니까 실력이 늘었다. 들을 때보다 말할 때 더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어로 말하니까 영어로 듣는 실력도 늘었다.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할 수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중요한 영어 말하기를 하려면 셋 중 하나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돈이다. 내가 미국의 식당에 들어갔다고 치자. 식당 종업원은 내 영어 주문을 골똘히 듣는데, 내가 돈을 내기 때문이다. 그 돈은 내가 해부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서 번 것이다.

둘째는 지식이다. 나는 미국에 연수 가서 해부학 실습을 도왔다. 영어 어휘가 모자라고 영어 발음이 나빠도 해부학을 쉽게 외울 수 있게 풀이하니까, 미국 학생이 고마워하면서 들었다. 어떤 학생은 고맙다고 나의 서툰 영어를 다듬어 주었다. 나는 학생한테 해부학을 가르치고, 학생은 나한테 영어를 가르친 셈이었다.

나는 한국의 해부학 실습실에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10개의 조가 있으면, 10명의 각 조 대표를 불러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조 대표가 내 이야기를 나머지 학생에게 전달한다. 그런 내가 미국에서는 친절하게도 각 조한테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였다. 조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였고, 그러면서 영어로 말하는 실력이 부쩍 늘었다. 학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부학을 가르쳤던 것이다.

셋째는 우스갯소리이다. 미국에서 해부학 실습을 마치면, 종종 학생과 밥을 먹거나 맥주를 마셨다. 그런 자리에서 학문을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은가? 점잖은 내용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우스갯소리뿐이다.

나는 해부학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를 이야기하였다. “밥을 먹으면 졸린 까닭은? 밥을 먹으면 중력 때문에 위가 내려가는데, 이때 위눈꺼풀도 함께 내려간다. 위와 위눈꺼풀을 잇는 인대가 있기 때문이다.” 해부학 용어에 익숙한 나한테는 어렵지 않은 영어이고, 미국 학생은 조금만 웃겨도 잘 웃어 준다. 우스갯소리가 아닌 진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밥을 먹으면 혈액이 위창자로 쏠리고, 그만큼 혈액이 뇌로 가지 않아서 졸리다.” 정말 졸리고 지루한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어떤 사람을 흉볼 때에는 지루하다고 말한다. 지루하니까 그 사람과 어울리지 말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잘 어울리고 영어로 실컷 말하려면, 우스갯소리를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제까지의 글을 읽고 이렇게 따질 수 있다. “돈, 지식, 우스갯소리는 한국말을 할 때에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특히 이성을 꼬일 때 필요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맞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하는 법입니다. 이성을 꼬이는 것과 외국 사람을 사귀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영어 회화를 잘하려고 투자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나는 자기의 전공, 즉 자기의 밥줄에 더 투자하라고 권한다. “밥줄 덕분에 돈을 벌고, 밥줄에 관한 지식과 우스갯소리를 알면, 영어로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 회화보다 밥줄에 관한 영어를 읽고 쓰는 데 더 투자하라고 권한다. “나는 해부하다 생긴 일을 재미있는 만화로 그렸으며, 그 만화를 영어로 번역해서 책을 펴냈고, 국제 인터넷 책방인 아마존에 올렸습니다. 영어 회화를 잘하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영어 해부학 만화책을 펴낸 사람은 전세계에서 나뿐입니다. 아직 만화책이 별로 안 팔렸지만, 그래도 전세계에서 나뿐입니다.” 간추려서 하고 싶은 말이다. “다른 사람의 영어를 부러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당신의 밥줄을 부러워하게 만드십시오. 영어보다 밥줄이 먼저입니다.”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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