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6 19:00
수정 : 2014.06.08 11:02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세계의 3대 체육 행사를 꼽으라면, 여름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을 먼저 꼽는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꼽는다. 겨울 올림픽, 육상 선수권대회, 포뮬러 원, 엑스포(다른 행사이지만)…. 세계의 3대 박물관을 꼽으라면, 대영 박물관(런던)과 루브르(파리)를 먼저 꼽는다. 나머지 하나는 사람마다 다르게 꼽는다. 바티칸 박물관(로마), 에르미타주(예르미타시) 박물관(상트페테르부르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뉴욕), 고궁 박물원(타이베이)….
의사한테 사람 몸의 3대 기관을 꼽으라면, 뇌와 심장을 먼저 꼽는다. 나머지 하나는 의사마다 다르게 꼽는다. 허파, 간, 이자, 콩팥, 내분비샘, 골수…. 의사마다 자기가 다루는 기관을 꼽으려고 한다. 하여튼 이 기관을 모두 생명기관이라고 부른다. 크게 다치면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생명기관이 아닌 기관도 있는데, 보기를 들면 위이다. 수술로 위를 다 떼어내면, 밥을 조금씩 먹어야 하므로 힘들지만 생명을 잃지는 않는다.
생명기관의 대표는 역시 뇌와 심장이다. 뇌와 심장이 다쳐서 생명을 잃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특히 뇌와 심장에 분포하는 동맥 탓에 죽는 사람이 많다. 암 다음으로 흔한 사망 원인이다.
뇌는 몸무게의 2%뿐인데, 심장이 뿜어낸 혈액의 20%나 차지하는 욕심쟁이다. 숨을 안 쉬면 산소 없는 혈액이 온몸으로 퍼진다. 다른 기관은 웬만큼 견디는데, 뇌는 견디지 못해서 금방 다치고 따라서 생명을 잃는다. 숨을 안 쉬고 3분 동안 참을 수 있다고 치자. 뇌가 산소 없이 3분 동안 참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물고기 회를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바다에서 잡으면 금방 죽는 물고기, 즉 뭍에서 활어로 먹기 어려운 물고기가 뇌와 비슷하구나.”
뇌에 분포하는 뇌동맥은 잘 막히거나 터진다. 막히거나 터지면 그 뇌동맥이 퍼져 있는 뇌 부분이 다친다. 이런 병을 뇌졸중 또는 중풍이라고 부른다. 뇌졸중은 ‘뇌에 졸지에 생긴 중풍’을 뜻한다. ‘증’으로 끝나는 병이 많아서 뇌졸증이라고 틀리게 적는 사람이 많은데, 뇌졸중이 맞다.
심장에 분포하는 심장동맥의 다른 이름은 관상동맥이다. 나는 옛날에 관상을 ‘대롱(管)처럼 생긴’이라고 잘못 알았다. “이상하다. 모든 동맥이 대롱처럼 생겼는데, 왜 이것만 관상동맥일까?” 알고 보니까 관상은 ‘왕관(冠)처럼 생긴’이었다. 나는 심장을 해부할 때마다 되새긴다. “아! 관상동맥의 줄기가 심장을 감싸는구나. 왕이 왕관을 쓴 것처럼 심장이 관상동맥을 썼구나.” 관상동맥은 심장에서 일어난 대동맥의 첫째 가지이다. “심장이 자기한테 필요한 혈액을 챙기고 나서, 나머지 혈액을 다른 기관한테 나누어 주는구나. 사람이 자기한테 필요한 돈을 챙기고 나서, 나머지 돈을 다른 사람한테 나누어 주듯이 그렇구나.”
관상동맥은 터지지 않는 대신에 잘 막힌다. 막히면 그 관상동맥이 퍼져 있는 심장근육이 죽었다가 살아나거나, 완전히 죽는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병이 협심증이고, 완전히 죽는 병이 심근경색증이다.
뇌졸중과 심근경색증은 주로 고혈압 때문에 일어난다. 고혈압 환자한테 혼날 각오로 하는 말이다. “고혈압은 죽을 때가 되었으니까 준비하라는 고마운 신호이다. 교통사고처럼 준비하지 못한 채로 갑자기 죽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죽기 싫으면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고 혈압을 떨어뜨려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살을 빼고 담배를 끊어서 혈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많이 먹거나 담배를 피우면 즐겁다. 그런데 즐거운 만큼 일찍 죽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뇌를 해부하면 뇌졸중이 가끔 나타난다. 뇌동맥이 터져서 뇌가 피범벅인 시신도 있다. 심장을 해부하면 관상동맥에 넣은 내관(스텐트)이 때때로 나타난다. 그 시신의 사망 원인을 찾아보면 역시 심근경색증이다. 해부학 실습실 밖에 나와서 뚱뚱하거나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보면, 뇌와 심장의 끔찍한 모습이 떠오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각한다. “요즘에는 젊은 사람도 뇌졸중과 심근경색증으로 많이 죽는데, 저 사람은 죽을 것을 준비해 놨나? 저 사람의 가족도 이것저것을 준비해야 될 텐데.”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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