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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0 19:03 수정 : 2014.06.22 14:19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의과대학 학생이 해부학 공부에 시달리다 보면, 잘 때 해부학 꿈을 꾼다. 세 학생이 모여서 자기의 끔찍한 꿈을 이야기한다. “나는 시신 옆에 누워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아예 시신이 되어서 해부되는 꿈을 꾸었다.” “나는 낙제해서 다시 해부하는 꿈을 꾸었다.” 보통 사람한테는 둘째 꿈이 가장 끔찍하겠지만, 의과대학 학생한테는 마지막 꿈이 가장 끔찍하다.

내가 의과대학 학생일 때에는 학년 낙제가 요즘보다 많았다. 의예과를 포함해서 6년 동안 다니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별 탈 없이 다니는 학생은 3명 중 2명뿐이었다. 나머지 학생은 적어도 한 번 낙제하였고, 두 번 이상 낙제한 원로 학생도 꽤 많았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햇수를 평균 내면, 6년이 아닌 7년이었다. 물론 원로 학생이 햇수를 늘리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임상의학 과목보다 의예과 과목과 기초의학 과목에서 많이 낙제하였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교양을 많이 다루는 의예과 과목에서 낙제하면, 교양을 두 번 배우니까 교양이 많은 의사가 될 것이다. 기초의학 과목에서 낙제하면, 기초를 다시 익히니까 기초가 튼튼한 의사가 될 것이다.” 나는 앞의 경우에 속했으며, 덕분에 요즘 이렇게 교양이 넘치는 글을 쓰고 있다.

낙제를 많이 시키는 기초의학 과목은 물론 해부학이다. 해부학을 모르는 학생이 졸업해서 돌팔이 의사가 되면, 해부학 선생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돌팔이 의사를 만드는 것보다는 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 낫지.” 낙제를 많이 시켜서 해부학 선생은 괴롭기도 즐겁기도 하다. 괴로운 것은 다음해에 더 많은 학생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이다. 몹시 괴로운 것은 더 많은 학생의 시험 답안지를 채점해야 된다는 것이다.

즐거운 것은 실리와 명분으로 나눌 수 있다. 즐거운 실리는 낙제한 학생 덕분에 다른 학생이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해부학을 소홀히 공부하면 얼마나 끔찍해지는지 낙제한 학생이 날마다 보여 준다. 실감나게 보여 주는 덕분에 학습 분위기가 좋다. 게다가 낙제한 학생은 지난해에 해부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학생의 해부 실습을 도와준다. 조교 수준으로 도와주는 덕분에 해부 진도가 잘 나간다.

즐거운 명분은 낙제한 학생이 등록금을 또 낸다는 것이다. 해부학 선생은 의과대학 학장한테 큰소리친다. “입학 정원보다 많은 학생이 해부학을 배우고, 덕분에 등록금 수입이 늘었습니다.” 돈 받고 가르치는 것을 장사로 여기면, 낙제한 학생은 고마운 단골손님이다. 해부학 선생은 낙제한 학생한테 짓궂게 말한다. “올해에도 찾아와 줘서 고맙다. 단골이니까 잘해 줄게.”

바다의 가두리 양식장과 의과대학은 비슷하다.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가두어 놓고 키우듯이, 의과대학에서 학생을 가두어 놓고 키운다. 양식장 안팎의 물고기가 서로 부러워하듯이, 의과대학 안팎의 학생이 서로 부러워한다. 안에서는 밖의 자유를 부러워하고, 밖에서는 안의 먹이를 부러워한다. 의과대학 학생은 이것을 잘 안다. “양식장과 마찬가지로 의과대학은 자유가 없지만 먹이가 알찹니다. 꼴찌로 졸업해도 엄청난 의학 지식을 갖추니까 그렇습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양식장과 의과대학은 다르기도 한데, 학생은 이것을 또한 잘 안다. “양식장은 당근(먹이)만 써서 키우는데, 의과대학은 당근(먹이)과 채찍을 함께 써서 키웁니다. 조금 아픈 채찍은 꾸지람이고, 끔찍하게 아픈 채찍은 역시 낙제입니다. 양식장보다 의과대학이 나쁜 셈입니다.”

학생이 낙제와의 전쟁 끝에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병원에서 수련의(인턴), 전공의(레지던트)가 된다. 수련의, 전공의한테도 당근과 채찍을 쓸까? 아니다, 당직과 채찍을 쓴다. 갈수록 태산이다. 수련의, 전공의한테 날마다 당직을 시키는 전문의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병원에 남아!” 그 전문의가 품고 있는 사상은 ‘남아선호사상’이다. 반대말은 여아선호사상이 아니라 ‘집에가선호사상’이다. 병원은 당직, 즉 남아선호사상이 가득한 곳이다. 이처럼 의과대학과 병원은 버텨서 살아남기가 힘든 곳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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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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