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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5 18:51 수정 : 2014.07.26 15:04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해부학을 익히고 나면, 산 사람을 보고 만지면서 속에 뭐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피부 속의 근육, 뼈, 동맥, 정맥이 어느 자리에 있고 심장, 간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을 표면해부학이라고 부른다. 표면해부학은 임상에서 중요하다. 환자가 어디를 가리키면서 아프다고 말하면, 의사는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환자를 해부할 수 없지 않은가.

보기를 들어서, 주먹 쥐는 것의 반대로 엄지손가락을 세게 펴면 엄지손가락 쪽 손등에서 두 힘줄이 튀어나온다. 긴엄지폄근과 짧은엄지폄근의 힘줄이다. 두 힘줄 사이는 움푹 들어갔는데, 이곳을 해부코담뱃갑이라고 부른다. 움푹 들어간 곳에 가루담배를 놓고 코로 들이마셨다고 부른 이름이다. 해부코담뱃갑으로 노동맥이 지나가는데, 손가락을 대면 노동맥의 맥박을 만질 수 있다. 손목 앞에서 만져지는 노동맥이 손등으로 꺾인 것이다. 어려운 내용 같지만 시신을 해부한 학생한테는 어렵지 않다.

의과대학 남학생이 수영장에 가면 여자의 수영복 속을 꿰뚫어보니까 즐겁지 않을까? 꼭 즐겁지는 않다. 보통 남자의 경우 집중하면 수영복 속의 피부가 보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의과대학 남학생의 경우 집중하면 역시 피부가 보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피부 속의 근육과 뼈가 보인다. 쓸데없이 너무 많이 벗긴 결과이며, 배운 해부학을 마음의 눈에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직업병이 아닌 공부병으로 여긴다.

표면해부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한테 자기 몸을 만지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기 몸을 만져서 느낀 구조물은 나중에 환자 몸을 만져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이 뚱뚱해서 만지기 어려운 학생한테는 곁에 있는 마른 남학생을 만지라고 시킨다. 마른 남학생은 연예인처럼 인기가 좋아지고 우쭐해서 이렇게 외친다. “줄을 서시오! 차례대로 만지시오!”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천원씩 내고 만지시오. 열 번 만지면 한 번 공짜이고,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도 한 번 공짜이오.”

표면해부학 실습에서 어려운 것은 남녀의 다른 구조물이다. 이를테면 남자는 속옷 속에 있는 두덩뼈의 양쪽에서 정관 등을 만질 수 있고, 여자는 그곳에서 가느다란 인대를 만질 수 있다. 나는 짓궂게 둘 다 만지라고 시킨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이성의 것을 어떻게 만졌는지 묻는다. 여학생은 어린 남자 조카의 것을 만졌다고 대답한다. 남학생은 못 만졌다고 대답하면서 투덜댄다. “여자가 남자 몸을 만지는 것은 괜찮아도, 거꾸로는 성추행입니다. 성차별을 느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만지려고 했는데 시간도 돈도 모자랐습니다. 그 돈은 실습비니까 학교에서 대줘야 합니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표면해부학 실습을 위해 내가 다른 사람을 만질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만지게 할 수도 있다. 안마받는 것을 뜻한다. 안마받으면 힘이 들지 않아서 좋은데 대신에 돈, 즉 실습비가 든다. 안마받을 때 다른 사람은 긴장을 풀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못한다. 내가 아는 표면해부학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느 근육을 누르고 있구나. 관절을 꺾어서 어느 인대를 늘리고 있구나. 수많은 근육과 인대를 짜임새 있게 건드리는 것을 보니까, 해부학을 배웠구나.’ 나는 이런 교육 효과 때문에 의과대학 학생을 위한 안마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퇴폐 안마시술소 탓이었던 것 같다. 하여튼 표면해부학 실습은 보거나 만지거나 만져지는 것이며, 모두 즐겁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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