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해부학을 익히고 나면, 산 사람을 보고 만지면서 속에 뭐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피부 속의 근육, 뼈, 동맥, 정맥이 어느 자리에 있고 심장, 간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을 표면해부학이라고 부른다. 표면해부학은 임상에서 중요하다. 환자가 어디를 가리키면서 아프다고 말하면, 의사는 그 속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환자를 해부할 수 없지 않은가. 보기를 들어서, 주먹 쥐는 것의 반대로 엄지손가락을 세게 펴면 엄지손가락 쪽 손등에서 두 힘줄이 튀어나온다. 긴엄지폄근과 짧은엄지폄근의 힘줄이다. 두 힘줄 사이는 움푹 들어갔는데, 이곳을 해부코담뱃갑이라고 부른다. 움푹 들어간 곳에 가루담배를 놓고 코로 들이마셨다고 부른 이름이다. 해부코담뱃갑으로 노동맥이 지나가는데, 손가락을 대면 노동맥의 맥박을 만질 수 있다. 손목 앞에서 만져지는 노동맥이 손등으로 꺾인 것이다. 어려운 내용 같지만 시신을 해부한 학생한테는 어렵지 않다. 의과대학 남학생이 수영장에 가면 여자의 수영복 속을 꿰뚫어보니까 즐겁지 않을까? 꼭 즐겁지는 않다. 보통 남자의 경우 집중하면 수영복 속의 피부가 보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의과대학 남학생의 경우 집중하면 역시 피부가 보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피부 속의 근육과 뼈가 보인다. 쓸데없이 너무 많이 벗긴 결과이며, 배운 해부학을 마음의 눈에서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직업병이 아닌 공부병으로 여긴다. 표면해부학을 가르치면서 나는 학생한테 자기 몸을 만지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기 몸을 만져서 느낀 구조물은 나중에 환자 몸을 만져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이 뚱뚱해서 만지기 어려운 학생한테는 곁에 있는 마른 남학생을 만지라고 시킨다. 마른 남학생은 연예인처럼 인기가 좋아지고 우쭐해서 이렇게 외친다. “줄을 서시오! 차례대로 만지시오!” 간혹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천원씩 내고 만지시오. 열 번 만지면 한 번 공짜이고,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도 한 번 공짜이오.” 표면해부학 실습에서 어려운 것은 남녀의 다른 구조물이다. 이를테면 남자는 속옷 속에 있는 두덩뼈의 양쪽에서 정관 등을 만질 수 있고, 여자는 그곳에서 가느다란 인대를 만질 수 있다. 나는 짓궂게 둘 다 만지라고 시킨다. 일주일이 지난 다음에 이성의 것을 어떻게 만졌는지 묻는다. 여학생은 어린 남자 조카의 것을 만졌다고 대답한다. 남학생은 못 만졌다고 대답하면서 투덜댄다. “여자가 남자 몸을 만지는 것은 괜찮아도, 거꾸로는 성추행입니다. 성차별을 느꼈습니다.” “여자친구를 사귀어서 만지려고 했는데 시간도 돈도 모자랐습니다. 그 돈은 실습비니까 학교에서 대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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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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