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24 19:57
수정 : 2013.07.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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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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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연애]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청년 ㄱ씨가 청년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을 찾아왔다.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일했고, 사장으로부터 심한 욕설도 들었던 청년은 밀린 임금을 돌려받고자 조합원이 되었다. 청년은 최저임금 인상 운동에 열성을 보였다. 시간당 최저임금 100원, 200원 올리는 것은 청년 현실을 개선하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며 내년엔 최소 2000원은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에 속했다.
그날도 밤늦도록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토론이 끝나고 뒤풀이를 갔는데 청년은 한 여성 조합원 앞에서 갑자기 온건파가 되었다. 원칙적인 토론은 온데간데없고 그 여성 조합원의 주장에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으니 동결하자는 경영계의 주장도 받아들일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을 한 채로. 몇 시간 뒤 둘이서 조용히 묘한 눈맞춤을 나누고 뒤풀이 중간에 따로 사라졌다. 며칠 뒤 두 사람은 3시간은 일해야 한끼 식사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에서 ‘연애질’을 하다 딱 걸리고 말았다.
청년이 아프다고 한다. 2011년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20대 최고의 고민이 ‘취업’이고, 30대는 ‘노후 걱정’이라고 했다. 검색창에 ‘청년’을 적어 넣으면 ‘실업’이라는 우울한 단어가 자동으로 완성된다. 청년유니온에서 열심히 청년의 아픔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불현듯 되돌아보니, 어럽쇼. 조합원들은 청년 노동조건 개선은 뒷전이고, 연애 이야기로 밤을 새운다. 회의나 캠페인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한 조합원은 소개팅 약속 시간은 절대 늦는 법이 없다고 한다.
맞다. 사람은 사회가 있기 전에 뜨겁게 연애부터 했다. 사회는 청년을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우울한 말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땡전 한푼 없는 청년도 나름의 방식으로 연애를 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청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창 힘이 넘치는 시기에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울해하기만 하면서 이 시대를 이겨내겠는가. 연애라도 해야지. 안 되면 연애 ‘시도’라도.
10여년 전 대학에 다닐 때 “조국에 대한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난 조국을 사랑하겠다”고 말하던 갓 스물한살 먹은 운동권 선배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연애를 시작한 그 선배는 멋쩍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조국에 대한 사랑과 이성에 대한 사랑은 양립할 수 있다”며 노선을 수정했다. 그래서 스무살 시절부터 연애는 그 어떤 이념보다 더 높은 가치였고 절대 선이었다. 10년간 열심히 소개팅을 했고, 연애를 ‘시도’했고, 또 연애했고, 실연했다. 친구들도 가진 것과 상관없이 누구나 한목소리로 외로워했고, 소개팅을 요구했고, 연애에 고민했다. 신문이나 드라마에서는 비정규직과 우울한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다. 나는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않고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은 그냥 청년들의 연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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