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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1 19:48 수정 : 2013.07.12 10:10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주차는 어디에 하셨어요?”라고 소개팅녀의 질문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까지 배려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조금 있다가 넌지시 1년에 얼마나 버는지를 물어보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당시 살던 원룸을 지적하며 “그럼 집이 없으신 거군요?”라고 공격을 했다. 남자라면 응당 갖춰야 할 3가지 덕목(?)에 대해서 궁금했던 소개팅녀는 내가 주차를 어디 했는지가 궁금했던 게 아니라 자동차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차종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갑자기 ‘날 좋은 주말 오후에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당시 나의 소개팅 원칙은 ‘예의 바르게’였기에 웃으면서 질문에 답을 했다. 소개팅의 지엄한 규칙대로 내가 밥값을 내고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그런데 자동차, 연봉, 집에 대한 3단 질문 공격이 계속 생각이 나 밥값을 내는 게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밥을 계산하면서 “차 한잔 사주시죠”라고 제안하며 기어이 2차는 ‘얻어먹고’ 소개팅을 끝냈다.

소개팅은 지치는 일이다. 예의 바르고 말이 잘 통하며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만나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는 데 소개팅의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해주면서 “귀엽고 밝은 여자”라고 설명을 해줘도 나한테도 그런지는 소개팅 자리에 나갈 때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친구로서만 귀엽고 밝을 수도 있으니까.

특히 남자들에게 소개팅은 더욱 지치는 일이다. 2013년 소개팅의 규칙은 모든 행위를 남자가 먼저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을 책임지는 선발투수의 첫 투구처럼 모든 책임을 안고 먼저 문자나 전화를 하고, 먼저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고, 결정을 하고 애프터 하는 것까지 모두 남자가 먼저 해야 한다. 삼각김밥은 삼각형이고, 최저임금은 4860원인 것처럼 ‘남자가 먼저 연락한다’로 소개팅 규칙은 그냥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개팅 전화번호를 받고 남자가 먼저 문자를 안 보내면 ‘욕’을 먹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고단함을 인내하고, 주말의 휴식을 반납하며 소개팅을 했던 이유는 그 자체로 어떤 의미에선 연애였기 때문이다. 꼭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더라도 처음 연락을 하고, 데이트 약속을 잡고, 첫 만남을 기다리는 모든 과정은 연애에 가까웠다.

연애를 하지 않던 시절엔 강남역 7번 출구가 됐든, 홍대역 5번 출구가 됐든 주말 일정표에 소개팅 약속 날짜를 적어두고 나면 한 주를 살아갈 힘이 조금은 더 났다. 소개팅의 현실이 비록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매번 ‘혹시나’ 하면서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 물론 대부분은 ‘역시나’ 하면서 돌아오게 되지만.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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