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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9 19:12 수정 : 2013.07.19 19:27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미팅 약속 30분 전에 미리 작전회의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만났다. 나와 친구 ㄴ은 요즘 부쩍 외로워하는 ㄱ을 밀어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ㄱ은 “그냥 재미있게 놀다 오면 되지”라며 짐짓 쿨한 척했지만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우리는 미팅을 하기로 한 술집에 미리 도착해서 여자 쪽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조금 지나 누가 봐도 미팅하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법한 여자 3명이 들어왔다.

미팅녀 3인의 등장. 이름과 나이와 같은 건조하고 어색한 소개를 하면서 앞에 앉은 여자들을 탐색했다. 누가 봐도 여자 2호가 미팅에서 화살표를 독차지할 스타일이었다. 친구 ㄱ도 여자 2호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미팅은 절대 여자 2호만을 위해 준비된 자리가 아니다. 여자 1호와 여자 3호가 미팅이 언짢거나 재미없게 느끼면 여자 2호도 오늘 처음 보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미팅남 3명 때문에 수년간의 우정이 깨질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나의 임무는 미팅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친구 ㄱ이 일방적으로 여자 2호에게 말을 거는 중에도 난 여자 1호와 3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술이 조금 돌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잠깐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친구 ㄱ과 ㄴ을 불렀다.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친구 ㄱ에게 “여자 2호 괜찮지?”라고 물었고, 친구도 몇 년을 짝사랑한 표정으로 여자 2호의 칭찬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친구 ㄴ이 지나가듯 “여자 2호 괜찮더라”며 한마디를 던졌다. ㄱ을 밀어주기로 한 사전 합의는 폐기되었고 무언의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우린 한 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 앞에 우정은 쉽게 차순위로 밀려났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합의는 깨졌고, 친구 ㄱ과 여자 2호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려던 나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첫 미팅을 했던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미팅 자리에서 직접 맘에 드는 이성을 선택했다. 당시 유행하던 방송 <사랑의 스튜디오> 형식을 빌려와 맘에 드는 상대를 지목하는 ‘사랑의 짝대기’도 했었고, 소지품을 하나씩 꺼내서 맘에 드는 이성의 것과 교환하기도 했다. 친구들의 작대기는 꼭 2개 이상이 한 여자에게로 향했고 몇 년간의 우정보다 여자의 선택만을 갈구하는 순간이 생겼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친구는 다시는 너희들과 미팅을 나가지 않겠노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친구 ㄱ, ㄴ과 함께 나갔던 미팅은 미팅녀들과 서로 번호만 교환하고 끝이 났다. 친구 ㄱ과 ㄴ에게 미팅 끝난 후 여자 2호에게 연락을 따로 했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ㄱ과 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서로 잘 지냈다. 지금 이 글로 친구 ㄱ, ㄴ에게 고백을 하자면 미팅 다음날 여자 2호가 나에게 ‘어제 잘 들어가셨나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사랑의 짝대기’라도 했다면 분위기는 어땠을까? 참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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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양호경의 청춘십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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