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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2 19:44 수정 : 2013.08.04 10:59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주말마다 ‘소개팅’을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소개팅이란 것이 처음 소개팅녀의 전화번호를 받고 어떻게 첫 문자를 보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해 소개팅을 거쳐 애프터와 혹은 ‘까임’이 하나의 과정이다. 그 과정들이 1주일 내에 끝나지 않고 중첩되다 보면 지난주에 만난 사람과 2주 전에 만난 사람이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어김없이 주말에 소개팅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오늘 소개팅 즐거웠습니다. 잘 들어가세요’라는 ‘매너 문자’를 보냈다. 소개팅녀로부터 답 문자가 왔다. ‘아~ 소개팅 또 하셨어요? 그런 사람 아닌 줄 알았는데 가벼우신 분이시군요.’ 이름이 비슷한 지난주 소개팅녀에게 문자를 잘못 보낸 것이다. 요즘 스마트폰은 한 사람과 주고받은 문자 내역은 한눈에 볼 수 있고, 카카오톡에서는 사진도 뜬다. 당시 휴대폰은 이름을 찾아서 문자를 보내야 했고, 이전에 어떤 내용으로 문자로 대화를 했는지 보려면 문자 저장용량이 차서 지워져 있기 십상이었다. 이름만 찾아서 문자를 보내다 실수를 한 셈이다. 결국 그 소개팅녀에게 나의 ‘가벼움’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그렇게 그 인연은 끝난 줄 알았다.

한두 해가 지난 어느 날 친구들과 미팅을 나갔는데 미팅녀 중 한 명이 눈에 익었다.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기억을 되돌려보고 있는데 그 미팅녀가 대뜸 나한테 물었다. “저 누군지 알죠?” 난 무난하게 “아~네, 본 적 있는 거 같아요. 어디서 봤죠?”라고 얼버무렸더니 여자분이 바로 돌직구를 날렸다. “역시 가벼우신 분이시네요. 사람도 잘 기억 못 하고.” 그때 떠올랐다 한두 해 전에 문자 잘못 보내서 사과를 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 소개팅녀였다. 다행히 나의 과오를 소재로 미팅 분위기가 더욱 유쾌해지긴 했지만 난 비판을 받으며 조용히 그 시간을 보냈다.

인연을 가벼이 여기자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일정을 처리하듯 나갔던 소개팅은 인연의 기승전결에서 상대방을 소외시켰다. 그랬기 때문이었는지 몇 개의 소개팅을 동시에 진행하며 낚싯대를 여러 개 던졌던 그 시절에는 애프터를 하고 ‘썸녀’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내가 가벼이 여긴 인연의 무게로 상대도 똑같이 그리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친구는 학생 때 소개팅을 했다가 거절했던 남자를 본인이 취직한 회사의 ‘갑’인 거래처 직원으로 만나서 갑을의 입장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다른 한 친구는 소개팅녀와 사귀지 않더라도(혹은 못하거나) 그냥 친구로 잘 지냈다. 난 소개팅에서 연애가 아니면 연락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지만(그게 소개팅의 목적이니까) 그 친구는 결국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분이 소개해준 사람이랑 결혼을 했다. 맞다. 인연은 억겁을 지나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항상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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