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16 19:21
수정 : 2013.08.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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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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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여자의 별명은 ‘한 다스’였다. 남자들끼리 삼삼오오 마시던 술자리에서 항상 그 여자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몇몇 남자들은 사랑의 순수성을 가장 먼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성급하게 그 여자에 대한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고백했다. 그렇게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남자가 10명이 넘었고, 언젠가부터 여자의 별명은 한 다스가 되었다.
여자는 연예인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은 아니었다. 작은 체구에 항상 웃는 얼굴, 그리고 친구의 안부를 잘 물어주던 착한 마음을 가졌다. 남자들은 그 여자에게 밥을 먹자거나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며 데이트 신청을 했다. 여자는 혼자 밥을 먹는 경우는 없었고, 주말이면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갓 스무살의 연애 경험이 없었던 여자는 남자들의 마음을 잘 몰랐던 것인지(아니면 진정 연애의 고수, 어장 관리의 고수였다고 주장하는 남자도 있었다) 남자들의 데이트 신청을 다 받아주었다.
하지만 여자는 1년이 지나도록 연애를 하지 못했다. 고백을 했다가 “넌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라는 말로 시작하는 거절의 답을 들은 남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백만 하면 그 마음을 다 받아줄 것 같았던 착한 여자는 1년이 지나는 시점에 거절만 하는 눈이 높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고백하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갖고 있던 몇몇 남자들은 여자의 높은 벽에 미리 마음을 접었다.
몇 년이 지나고, 학교를 졸업하는 사이에 여자는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두어번의 연애와 헤어짐을 경험했다. 여자는 어느 날 나에게 나랑 친했던 ㄱ의 안부를 물었다. 요즘 잘 지내냐고, 그리고 여자친구는 있냐고. 그리고 여자는 스무살 시절에 친구 ㄱ을 좋아했다고 털어놨다. 많은 남자들이 고백을 했었지만 자신은 ㄱ이 고백해주기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ㄱ도 스무살 때 나에게 그 여자를 좋아하는 마음을 말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 여자애도 아닌데 나한테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때로는 슬픈 표정으로, 때로는 환희에 차서 그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들이 고백하고 거절당했다는 소문을 들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접었다. 사랑은 국경도 넘는다는데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같았음에도 둘은 결국 이어지지 못했다.
사람들은 인기녀였던 여자를 부러워했다. 자기 돈 내고 밥을 먹는 경우도 없었고, 여자에게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떠들던 남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스무살 당시에 남자의 고백을 거절하는 것도, 연락에 하나하나 답해주는 것도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했다. 여자는 연애를 몇 번 하면서 그 시절을 되돌아보니 모든 남자의 마음에 착하게 응해주는 것이 그 남자에게도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거절을 잘 못하는 그 여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여러 자루의 연필이 아니라 지금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그리고 쥐고 싶은 딱 한 자루의 연필이었던 것이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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