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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30 19:42 수정 : 2013.09.01 12:12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그녀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달 동안 매주 만나다가 갑자기 나의 연락에 반응이 없던 그녀로부터 답이 온 것이다. ‘죄송해요. 일이 바빠서 답을 못 드렸어요.’ 갑자기 깊은 어항에 들어온 냄새가 났다. 아무리 바빠도 점심은 먹을 것이고, 퇴근길에 자투리 시간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도 몸도 바빴더라도 연락은 할 수 있었잖아. 나도 당신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바빴는데!’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도 진짜 바빴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닙니다. 바쁘시면 연락 못 하실 수 있죠’로 시작하는 친절한 답을 보냈다. 머리로는 파닥파닥 낚였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답문자를 보내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잘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나고 연락이 안 되는 기간들을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장에 들어온 것은 알겠는데 그래도 떡밥은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즈음 다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와서 주말에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파닥파닥. 만났을 때의 다정한 웃음이나 말투와는 달리 몇 달간 진전이 없었다. 그녀는 내가 조금 더 다가서려고 하면 한발 물러나고, 그만두자는 마음이 들 때 다시 한발 다가왔다.

누구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남자든 여자든 상대에 대한 확신이나 신뢰가 생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혹은 상대랑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도 외로움에, 혹은 결핍에 누군가의 일방적인 구애와 찬양을 받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 받을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어장관리를 하고 밀당을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절대적이고 완벽한 신뢰의 관계를 원하지만 현실의 남자와 여자들은 바짝 날이 선 고슴도치처럼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가시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연애라는 게 두 사람의 마음이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마음 아파하고 또 안달을 내기 마련이다. 어장관리나 밀당에도 급수가 있다. 어장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어도 상대랑 연애할 수 있다는 희망, 혹은 기대가 있어야 떡밥을 기다릴 이유가 있다. 그 기대와 좌절의 진폭이 크면 상처가 크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어장관리의 하급수는 어떤 날은 마치 연애라도 하듯 격하게 다가왔다가 다른 날은 처음 보는 사람보다 더욱 냉정하게 밀어내는 어항이다. 이런 어항 속에 물고기는 상처만 남고 결국 잘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아궁이의 장작이 다 타버려 불이 꺼지고 나면 나중에 장작을 더 넣는다고 해도 다시 불이 붙진 않는다. 어장관리, 혹은 밀당의 목표가 연애나 사랑이라면 시간에 맞게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 그 장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진지한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중에 자신의 옆에서 은은하게 온기를 밝히는 아궁이 하나가 남는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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