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13 19:37
수정 : 2013.09.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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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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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연애] 양호경의 ‘청춘 십자로’
남자는 연애를 쉬지 않았다. 어장관리를 해서 만나는 여자가 많다는 말이 아니라 손가락 걸고, 도장 찍는 연애, “우리 사귀자”, “응” 하는 진짜 연애를 쉬지 않고 했다. 짧은 기간 동안만 연애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수한 여자를 만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10년 넘게 연애가 제1의 직업이었던 남자는 꽤 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키였지만 남자는 연애 시작하는 일을 참 잘했다.
솔로라는 실업 상태를 거의 갖지 않은 남자를 두고 주변에서는 마성의 매력이 있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연애를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지?’ 난 연애가 끝나고 나도 과거의 사랑에 대해 애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길에서 나눠주는 식당 할인 쿠폰을 버리듯 무심히 지난 사랑의 기억을 버릴 수는 없었다. 연애라는 관계가 갖는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에너지는 장점에 비례해서 많아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 또한 무서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넌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사람을 잘 만나냐”고 물었다. 남자는 옛날 이야기를 해줬다.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가 헤어진 그날에 남들처럼 나도 힘든 줄 알고 술 마시며 슬퍼하고 있었어. 그런데 술기운인지 건너편에 앉은 여자가 너무 예뻐 보이더라고. 세상에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사랑하고 살지 않을 수 있겠어.” 그날 이후로 남자는 연애를 하고 헤어지면 바로 누군가를 찾았다고 했다. 슬퍼하기보다는 사랑하기를 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남자는 마지막에 꽤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귀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헤어지는 것도 습관이 되더라. 나 싫다고 가겠다는 사람 붙잡고 싶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10년 동안 한 것들이 다 사랑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어”라고 말하며 이제는 한 사람에게 안착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갑자기 ‘널 사랑하는 게 아니고 널 사랑하고 있단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남자는 연애의 설렘을 사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아무나’와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디에나 있는 불특정의 ‘a girl’과의 연애가 사랑의 모든 것이라면 인류가 수천년 동안 그렇게 사랑을 찬양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던 당시는 최소한 이 지구상의 유일한 한명인 그 사람, ‘the girl’과의 만남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연애는 항상 설레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먹먹하고, 때로는 화가 날 수 있다. 가끔은 지루하고 또 버거운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만나고 싶은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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