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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5 10:21 수정 : 2013.08.07 15:05

장강명 소설 <유리 최 이야기> ⓒ전지은

장강명 소설 <1화>



“이름은 안응칠이라 하오. 황해도 해주 사람이고 문성공의 후예요. 늦은 시각에 불쑥 찾아와 죄송하오.”

그러나 불청객은 그다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집주인이 앉으라고 의자를 내어줄 때까지 날카로운 눈길로 집을 훑어보았다. 돌로 대충 쌓은 만주식 시골집이었다. 먹다 남은 음식이 원탁에 놓여 있었고, 집 안에서는 중국 향신료 냄새가 났다. 집주인은 상대의 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확신에 차 있고, 단호하며, 남의 사정에 무심한 눈. 여관집 주인의 소개로 왔다는 말 때문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 집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자 속이 거북해졌다.

손님 역시 집주인을 뜯어보고 있었다. 유리 최라는 이름의 집주인은 얼굴에 천연두 자국이 가득하고 기골이 단단해 보였다. 턱이 뾰족하고 입술이 얇아 날카롭다는 인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손을 떠는 버릇 때문에 경망스럽고 어딘지 허술해 보인다는 느낌도 주었다.

소왕령(우수리스크) 역 앞의 여관집 주인은 유리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미친 신부, 말더듬이 신부라고들 하는데 진짜로 미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평소에는 온순하고 말이 없는 양반이 가끔 과격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신부라는 자가 행색이 워낙 추레한 데다 교회에서 하라는 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니 미쳤다고들 한다는 얘기였다. 꼬마 아이들이 “미친 신부 지나간다!”라고 욕을 하면 손을 흔들어주고,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서 멀리서 돌을 던지는 녀석들도 있다고 했다.

“정교교회는 양파 같은 건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동방정교회는 천주교회처럼 교회법이나 위계질서에 까다롭지 않소. 첨탑이 있어야 할 이유도, 십자가가 있을 필요도 없소.”

손님의 질문에 유리는 이렇게만 답했다. 중국정교회는 의화단의 난을 겪으며 박해를 당한 탓에 더 작은 가정교회들로 분화되고 있었다. 이런 독립가정교회들은 겉모습은 일반 가정집과 마찬가지였고, 이런 곳에서는 평신도가 사제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그가 “나타샤!”라고 소리치자 계집아이가 졸린 눈을 하고 나타났다. 어른은 아닌 것 같았지만, 몸이 너무 마른 탓에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아이였다. 얼굴이 갸름하고 예뻐 과년한 처녀로 보이기도 했고, 이제 갓 가슴이 나오려는 시기인 것 같기도 했다. 유리가 러시아어로 뭐라 말하자 계집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커다란 가마 옆문으로 들어갔다. 계집아이는 중국 차(茶)와 다기를 가지고 나와 탁자에 차리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응칠은 계집아이의 얼굴이 제법 요염하다고 생각했다.

“저 아이도 조선인의 자식인 듯한데……. 왜 집에서 조선 이름을 부르지 않소?”

“조선 이름이라고 특별할 게 뭐 있겠소? 부모가 누군지,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아이요. 성은 없고 이름은 그저 나타샤라고 하기에 나도 나타샤라고 부르고 있소.”

밤늦은 시각에 찾아온 이방인은 심문하듯 자꾸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는 조선과 일본, 청국의 삼국 관계나 무장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렇게 한참 묻다가 겨우 ‘나와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는지 본론에 들어갔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로씨야정교도 천주교와 본질적인 교리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알고 있소. 게다가 사제 된 사람이라면 다소 교파가 다르더라도 신자의 어려움을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오. 내가 중대한 일을 앞두고 고해 성사를 하고 싶은데 해줄 수 있겠소?”

“천주 앞에서 복음서의 사소한 해석 차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소이까. 말씀하시지요.”

“성사를 하려면 고해소에 가야 하는 게 아니오?”

“이곳이 교회이고 고해소요. 듣는 사람이라고는 천주 야소와 저밖에 없으니 그냥 말씀하셔도 되오.”

그렇게 말하던 유리의 눈이 응칠의 왼손에 잠시 머물렀다. 넷째 손가락 한 마디가 없었다. 응칠은 상대방의 시선에도 손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알아봐 줘서 흡족하다는 듯한 눈치였다. 잠시 뒤에 응칠이 입을 열었다.

“며칠 뒤에 늙은 도적을 하나 죽이려 하오. 하늘 아래 거리낄 게 없으나 성경에서 남을 죽이지 말라고 한 대목이 걸리외다.”




장강명(소설가)

장강명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동아일보〉에 입사해 지금까지 기자로 일하고 있다. 마라톤 풀코스를 5번 완주했으며 틈틈이 알토 색소폰을 분다. 과학소설 팬이며 추리소설도 좋아한다. 1994년부터 PC통신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했으며,〈월간 SF 웹진〉을 창간해 운영했다.《표백》으로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으로《뤼미에르 피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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