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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3 10:10 수정 : 2013.07.25 10:53

장강명 소설 <7화>



“손가락 하나 없는 조선인 말이오? 이 아래층에 있소. 이름은 나야 모르지.”

허리가 굽은 역무원이 말했다. 역사(驛舍) 안에 숙박시설이 따로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부근의 밥집과 여관을 돌아다니다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유리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매표소 뒤편 계단으로 내려갔다.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부산스럽게 물건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뉘시오?”

“공립회 하얼빈지부 회원이외다. 안 공에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 이리 찾아왔소.”

문이 열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의 사내가 나타났다.

“안 공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황해도 해주 사람이고 문성공의 후예인 안응칠을 찾고 있소. 여기 있는 거 아니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소?”

상대방은 자신이 엉겁결에 말실수를 한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 공이 지부에 담담탄(덤덤탄)을 구해달라고 요청했었소. 제 시각에 구하지 못해 이렇게 기차를 타고 찾아왔소이다. 거사 전에 물건을 전해줄 수 있게 되어서 기쁠 따름이오.”

“안 장군은 여기 없소. 하얼빈으로 돌아갔소이다. 길이 어긋났나 보구려.”

‘그렇다면 이 방에 묵었다는 손가락이 하나 없는 조선인은 누구란 말인가……’라고 의심의 눈길로 방 안을 들여다볼 때 수수께끼가 풀렸다. 책상에 앉은 사람의 왼손 약지가 중간에서 잘려 있었다. 이번 암살조에는 단지회 회원이 두 명 있었던 거다. 한 명은 차이자거우에, 또 한 명은 하얼빈에.

유리는 “덤덤탄은 놓고 가시오”라는 남자에게 “안 공에게 직접 줘야 하는 물건이오”라고 대꾸하고 구내 여관에서 나왔다. 그는 역 건물 옆에 있는 러시아 경비대를 찾아가 여관에 수상한 자들이 있다고 신고했다.

“여관비가 없어 동포라는 구실을 대며 방을 함께 쓰자고 했는데 상대방이 하도 모질게 내쫓기에 성이 나서 그 방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소. 그런데 방에서 이토라는 말과 암살이라는 말이 들리고, 내일 아침이라는 둥, 탄환이라는 둥, 심상치 않은 단어들이 나오기에 이리 왔소이다.”

신고를 받은 러시아 헌병 쎄민은 유리의 말을 듣고 구내 여관에 가서 조선인 두 명이 방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유리가 총총히 하얼빈행 열차를 타고 떠난 뒤에는 마땅히 통역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쎄민은 역무원에게 다음 날인 26일 아침까지 밖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감시하라고 일렀다. 그 바람에 우덕순과 조도선은 이토 히로부미가 탄 열차가 차이자거우 역에 도착했을 때 승강장에 발을 대지도 못했다.

안 의사는 24일 동흥학교에서 김성옥의 소개로 조도선 선생을 만났다. 조 선생은 안중근과는 1879년생 동갑내기로, 그 자리에서 이토 암살단에 합류한다. 우덕순은 두 사람보다 한 살이 적은 서른이었다. 안 의사는 열일곱 살이던 유동하 선생에게 “김성백에게 돈을 빌려 오라”는 심부름을 시켜 거사 논의 장소에서 내쫓다시피 하고, 우덕순과 조도선에게 권총을 한 자루씩 나눠주었다. 안 의사는 이날 밤 ‘분개함이 뻗치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라, 쥐새끼 이토야 너는 산목숨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한시 ‘장부가’를 썼다.

역무원으로부터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하얼빈에 앞서 차이자거우에 정차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안중근 일행은 진작부터 차이자거우를 1차 암살 장소, 하얼빈을 2차 암살 장소로 정하고 있었다. 안중근 일행은 24일 밤 다 같이 하얼빈에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인 차이자거우 역으로 가서 사전답사를 벌였다. 원래는 차이자거우를 안 의사가, 하얼빈을 우덕순 선생이 맡기로 했으나 차이자거우 역을 보고 열차가 이곳에 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안 의사는 자신이 하얼빈을 맡아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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