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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24 10:08 수정 : 2013.07.25 10:49

장강명 소설 <8화>



“제 생각에도 차림새가 정장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재무대신이 어지간해서는 뜻을 굽히지 않을 태세입니다.”

하얼빈에서 코코브체프와의 첫 논쟁은 이토가 러시아 의장대의 사열을 받느냐 여부를 놓고 벌어졌다. 열차에서 내리기도 전이었다. 평상복을 입고 있었던 이토는 “이런 차림새로 군대를 열병하는 것은 군인들에 대한 결례”라며 거절했지만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까지 “과공비례가 될 것 같다”며 우려하자 러시아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열차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러시아 측 사절단과 악수를 다 마치고 나면 사열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오전 아홉 시가 되도록 환영 인파에서 안응칠을 찾지 못한 유리는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청국기와 러시아기, 일장기의 물결 사이에서 그는 길을 잃었다. 키가 큰 슬라브군 병사들이 일본인 환영객을 가리고 섰고, 사람들은 대부분 장갑을 끼고 있었다.

의장대가 열을 맞추는 것을 본 안중근은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고 여겼다. 그는 이토의 얼굴을 몰랐다. 그런 그 앞에서 표적이 ‘나 여기 있소’라며 한참을 걸어 다니게 될 예정이었다. 사열을 받는 사람이 걸어갈 통로에서 그가 서 있는 위치까지는 오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절망적인 초조함과 체념해버리고 싶은 욕망 사이에 있던 유리의 머릿속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러시아 경비대 장교로 보이는 사람에게 달려갔다. 장교는 폭탄 암살이 일어나는 줄 알고 움찔 놀랐고, 경비병들이 유리의 몸을 붙잡았다.

“행사를 중단하시오! 이 중에 암살범이 있소!”

“누구냐? 암살범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유리는 젊은 장교의 눈에 어린 불신의 빛을 읽었다. 어떻게든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믿게 만들어야 했다.

“내가 암살단원 중 한 명이오!”

장교는 갑자기 환영 인파에서 튀어나와 암살 계획을 밝히며 자수한 동양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몸수색을 당하다 자존심이 상한 일본 총영사가 러시아 철도경비대에 “일본인은 검문하지 말라”고 강력히 주장한 참이었다. 체포된 동양인은 “행사를 중단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이토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열차에서 내렸다. 단신인 그가 난간이 높은 계단에서 미끄러질 것을 우려한 모리가 옆에서 부축하려 들었으나 이토는 거절했다. 러시아 사절단에게 병약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흔들리는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 같다는 생각을 했다.

군악대가 곡을 연주하고 축포를 터뜨렸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안중근도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의장대가 다음 예포를 준비하는 걸 보고 중근은 가슴에서 브라우닝을 꺼냈다. 군악대의 축포 소리 때문에 사람들은 안 의사의 총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 총소리를 처음부터 제대로 들은 것은 러시아군 병사에게 양팔이 붙들려 있던 유리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붙잡혔다. 안 의사는 이토와 비서관, 일본 총영사, 그리고 만주 철도이사에게 모두 일곱 발을 쏘고 만세를 두 번 부르고 나서야 러시아군 병사에게 제지당했다. 우덕순과 조도선은 차이자거우에서 총기를 소지한 경위를 조사받던 중 이토가 총에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며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외쳤다. 그리고 자신들의 암살 계획을 실토하고는 그 자리에서 구속됐다. 이들과, 처음부터 암살범의 공범이라고 고백한 유리는 모두 같이 일본 영사관 경찰에게 넘겨졌다.

세계가 주목하는 재판이었고, 러시아로부터 재판권을 넘겨받아 일본 본토가 아닌 뤼순에서 진행하는 공판이었던 만큼 일본은 피의자들을, 특히 안중근을 정중하게 대우했다. 안 의사가 일본의 후한 대접에 놀라 자서전에서 “일본의 문명한 정도는 과연 일류국가라 할 만하다”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일본 재판부는 안중근에게 국제변호사를 두 명이나 붙여주고, 매일 목욕을 할 수 있게 했으며, 좋은 쌀밥과 닭고기, 과일, 고급 담배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뤼순 형무소의 난방 시설만큼은 썩 좋지 않아서, 안 의사는 1910년 1월에 방이 너무 추워서 손이 곱아 글을 쓸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3월까지 두 달 동안 임시로 방을 옮겼는데, 그곳이 유리 최의 옆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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