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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2 19:30 수정 : 2013.07.24 10:07

박미향 기자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뮤지션 강백수씨가 얇은 지갑으로 나홀로 잘차려먹기 비법을 격주로 알려드립니다.

나는 라면을 잘 끓인다. 라면이 잘 끓이고 말고가 어디 있나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라면을 정말 잘 끓인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라면왕’이라 부른다. 내가 끓인 라면은 옛날 여자친구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얻어먹었던 설렘 가득했던 그 라면 다음으로 맛있다.

라면을 잘 끓이게 된 것은 2006년.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아버지께 고시생이 되겠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학교 앞의 허름한 고시원에 입주했다. 당시 아버지께서 주시던 생활비는 40만원. 고시원에 들어간 실제 목적은 술을 마시다 막차에 쫓기는 게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 목적에 충실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생활비 40만원은 ‘서시’에서 ‘별에 스치던 바람’처럼 통장을 스치고는 일주일이 못 되어 증발하곤 했다.

고시원에는 공동주방이 있었다. 제공되는 음식은 김치와 밥뿐이었고 나머지는 직접 해 먹는 시스템이었다. 통장에 돈이 5만원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달 초, 나는 결단을 내렸다. 술을 한 번 덜 먹고 이 돈으로 다음달 생활비까지 먹을 양식을 비축하자고. 마트에 가서 라면을 샀다. 매일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할 판이었으므로 최대한 다양하게!

나는 라면을 좋아한다.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매일매일 끓여 먹고 사는 건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피땀 흘려 새로운 맛을 개발하고 계실 라면회사 직원분들께는 매우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라면의 맛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공동냉장고였다. 가난한 입주자들의 그야말로 피와 같은 밑반찬들과 식재료가 가득한 그 금단의 문을 나는 열고야 말았다.

남의 밑반찬을 보란듯이 당당히 꺼내 먹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잖아도 먹을 것에 민감한 처지들인지라 그 모습을 발견하면 반찬 주인들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을 라면에 넣는다면? 먹고 있는 중에 주인이 들이닥쳐도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래, 이 노다지 같은 냉장고를 활용해서 나는 최고의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나의 라면을 끼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를 위한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최고의 라면을 끓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지, 결코 먹을 것이 없어서 라면을 끓이는 것이 아니다!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달걀이나 다진 마늘부터 프라이드치킨 조각까지, 온갖 것을 라면에 넣어 봤다. 어떤 날은 먹을 만했고, 어떤 날은 억지로 입에 쑤셔넣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드디어 라면에 첨가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맞은편 방에 살던 여학생의 것으로 추정되던 콩나물무침이었다. 그냥 콩나물이 아니라 반드시 콩나물무침이어야 했다. 도대체 이 콩나물무침과 라면 사이에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기에 이런 강력한 맛을 낼 수 있는가! 콩나물 무침의 레시피를 검색해보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콩나물과 참기름과 다진 마늘이 빚어내는 앙상블이었던 것이다.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라면왕 강백수의 비결은 콩나물과 참기름과 다진 마늘,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약 두 달 동안 라면만 끓였던 경험, 그리고 생활비 40만원을 술값으로 탕진하던 지난날의 대책없음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알 수 없는 이유로 줄어드는 반찬을 보며 분노해야 했던, 그러나 지금은 더 따뜻한 집에서 더 맛있는 밥을 먹고 있을 고시원 이웃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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