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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3 21:05 수정 : 2013.07.24 10:06

강백수 제공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지훈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다. 원래 그는 경남 거제에서 나고 자랐는데, 거제에 불던 바닷바람만큼이나 거친 소년기를 보냈다. 열여섯 살의 그가 지면상으로 밝히기는 다소 곤란한 어떤 사건을 저지르자, 그의 부모님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외동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기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부모님은 서울에서 손에 꼽는 거대 교회가 있는 명일동에 그의 자취방을 마련한다. 부모님 품을 떠나 서울 생활이 정말 즐거웠던 지훈이는 그 생활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부모님께 자기의 삶을 위장하기 시작한다. 책꽂이 한가득 기독교 서적을 꽂아두고, 벽에는 성경 구절이 새겨진 나무판과 십자가를 몇 개나 걸어두었다. 부모님은 아직 모르신다. 그 방이 어느샌가 ‘소굴’이라고 불리며 시커먼 사내들의 허송세월의 온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우리 일곱 친구들은 틈만 나면 소굴에 모였다. 라면을 끓여먹으며 고스톱을 쳤다. 집주인이 없어도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낮잠을 잤다. 도어록 번호는 애프터스쿨의 유이씨의 생일이었다. 스무 살 넘어서부터는 편의점에서 참치와 오징어를 사다가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소굴의 영광은 지훈이가 군대에 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가 전역을 하자 다시 역사는 시작됐다. 그의 부모님은 그 거대 교회 옆에 아파트 전세를 얻어주셨다. 결혼 자금을 미리 당겨 주신 것이다. 우리 소굴은 약 2년 만에 반지하 원룸을 벗어나 열일곱 평 아파트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하나같이 동네 한량이었던 우리 일곱 중 누구는 대기업에 취업하고, 누구는 연구원이 되어 무슨 실험 같은 걸 한다. 누구는 도피 유학을 떠나고, 누구는 지방호텔 요리사가 되었다. 음악을 한다던 두 녀석 중 한 명은 중국에 있는 아버지 사업체를 물려받기 싫어서 이를 악물고 취업 공부를 시작했고 나머지 한 명은 나 강백수다.

스물일고여덟이 된 우리는 몸으로 하는 장난이 좋은데, 어쩌다 보니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른의 책임감’, ‘소셜 포지션’ 같은 것이 생겨났다. 이제 우리 술상에 소주와 라면만 올라오게 할 수는 없었다. 에스엔에스(SNS)를 보면 우리보다 한두 해 먼저 어른이 된 여자애들은 식탁에 뭐 고르곤졸라 피자나 부르기도 어려운 이름의 파스타 같은 걸 놓고 와인잔을 들고 사진을 찍더라. 우리도 우리의 소셜 포지션에 걸맞은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의견이 대두하였다.

참가자는 넷. 각자가 자신 있는 메뉴를 하나씩 만들기로 했다. 누구는 연어샐러드, 누구는 참치전을 준비했다. 나는 제육볶음을 만들 생각이었다. 우리의 짐승 같은 식욕을 고려하여 돼지고기 두 근과 당근만 사 들고 소굴로 향했다. 양념이야 어느 집에나 있는 기본적인 간장, 설탕, 후추,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같은 걸로 하면 되는 것이니 당연히 지훈의 양념을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의 오산이었다. 우리는 겉모습은 변했어도 그 본질이 변하지는 않았다. 반지하 소굴이 아파트가 되었지만, 찬장에는 여전히 라면밖에 없었다.

간장과 고춧가루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다. 후추는 사치라 쳐도 설탕 없이 요리를 할 수가 없어 집안을 두리번거리다가 식탁 위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콜라! 잔뜩 허세를 부리기로 작정을 한 날이라 소주 대신 싸구려 위스키와 콜라를 사 온 것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제육볶음은 간장과 고춧가루와 콜라에 버무려져 프라이팬으로 뛰어들었다. 다양한 채소를 볶았어야 하는데, 당근밖에 없어서 다른 친구가 만든 연어샐러드에서 양파를 골라내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로 마요네즈를 씻어내고 프라이팬에 던졌다.

그럴싸하게 차려 놓고 술잔을 들고, 에스엔에스의 여자들처럼 사진을 찍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 술에 취해 웃통을 벗고 시시한 농담과 몸개그를 했다. 낮에는 여러 가지 가면을 쓰겠지만, 열일곱 살이 스물일곱이 되어도, 아마 서른일곱이 되어도 우리의 이러한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다.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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