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9 20:34
수정 : 2013.10.10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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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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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청춘식탁’을 연재하고 있는 강백수입니다. 항상 ‘청춘식탁’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다는 칭찬과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야단을 감사히 들으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간 특집과 추석 등으로 공백이 컸는데요,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저에게는 중대한 변화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저의 본업은 음악가입니다. ‘강백수밴드’라는 밴드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저희 밴드에 자그마한 연습실이 생겼습니다. 연습실에는 저의 생활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드디어 자취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간 잠깐잠깐씩 고시원에도 살아 보고, 친구 집에도 얹혀살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혼자 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자취를 시작하니 역시나 생활과 직면하게 되더군요.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형광등을 갈았고요, 오늘은 일주일 만에 빨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먹는 것이 가장 문제더군요. 저희 본가는 엥겔지수가 굉장히 높은 집입니다. 집이 흥할 때나 어려울 때나 냉장고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채워두는 집이지요. 항상 아침마다 반찬 일고여덟 가지를 놓고 먹는 호사를 누리다가, 집을 떠나오니 음식을 위한 저의 노력은 하루하루 가히 사투라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주일 만에 벌써 여기저기서 살 빠졌다는 말을 듣습니다. 물론 ‘말랐다’는 말을 들으려면 제 몸에서 중학생 한 명 정도는 떼어내야 하겠지만요.
첫날은 입주 기념으로 족발을 배달해 먹었습니다. 인근에 사는 절친한 친구 두 명을 불러 호사스럽게도 편의점에서 사 온 보드카도 한 병 열었지요.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취해서 잤습니다.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어마어마한 숙취가 몰려왔습니다. 작업실에서 본가까지는 버스로 이십분이 걸립니다. 국물이 먹고 싶어서 하루도 못 되서 본가에 달려갔습니다. 저녁식사도 혼자 국밥을 사 먹었습니다. 그다음부터 매일 도시락을 주문해 연명했습니다. 새로운 동네에 와서 가장 친해진 사람은 바로 도시락집 아주머니였습니다. 치킨마요덮밥부터 콩나물밥까지. 에이치(H)사 임직원분들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음식을 사 먹는 일상이 반복될수록 저의 지갑 사정은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결혼식 축가를 부를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뷔페 결혼식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무조건 두 끼 분량은 먹어야겠다며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다 나르는 스스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집집마다 주방이 있고 가사노동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노동이라는 것을요. 저 역시 가사노동의 무게를 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음식을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밑반찬만은 사기로 했습니다. 반찬 얘기를 먼저 해볼까요. 젓갈은 실패였습니다. 자취생에게 창난젓은 너무 사치스런 음식입니다. 가격이 만만치가 않더군요. 메추리알 장조림은 딱 두 끼 먹으니까 없어집니다.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멸치볶음과 콩자반은 성공입니다. 가격에 비해 양도 많고 맛이 강렬해 소량으로도 밥을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김과 참치와 깡통 햄은 자취생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에너지원입니다.
된장찌개는 직접 끓였습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포만감에 비해 만들기 쉬운 음식입니다. 할머니께서 끓여주신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이고, 된장과 고춧가루를 풀고, 채소와 두부를 썰어 넣는 간단한 과정에 비해 만족스런 음식이 나왔습니다.
이렇게 저의 본격적인 청춘분투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립을 꿈꾸는 많은 청년들에게 한 가지 당부의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아한 독립, 꿈 깨시고, 부모님께 붙어 있을 수 있을 때까지 붙어 계세요.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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