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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13 20:23 수정 : 2013.11.14 15:34

강백수 제공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 식탁’

공연과 강연 스케줄이 있어 지난 5일께 제주도에 내려갔다. 해외여행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제주도만큼은 많이 내려가 봤다. 요새는 싼 항공권도 많거니와, 본가가 김포공항에서 가까워 서울 서쪽에 사는 나로서는 동쪽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나 제주도에 내려가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제주는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 커플이 되는 계기가 되었던 학술답사도, 스물세살 때 친구들과 함께했던 자전거 여행도 너무나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추억들이다. 이번 일정도 못지않게 행복했다. 성산일출봉 쪽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하면서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선배와 후배를 만나 제철을 맞은 방어회도 먹고, 스케줄이 끝나고 나서는 밴드 멤버들과 돔베고기, 고기국수, 몸국 등 제주 향토 음식도 먹으러 다녔던, 가히 식도락 여행이라 부를 만한 일정이었다.

성산일출봉 인근의 한 식당에서 해물뚝배기를 마주하자 2010년의 제주여행이 떠올랐다. 유채꽃이 만발했을 무렵 혼자 떠났던 여행이었다. 당시 나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한 친구로 인해 마음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스스로 삶을 저버린 그 아이에게 무언가 내가 힘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떠난 것이다. 사흘 동안 두번의 잊지 못할 만남이 있었다. 그때마다 맛있는 제주의 음식들이 함께해주었다. 해물뚝배기도 그중 하나다.

스쿠터를 대여해 해안도로를 따라 제주도를 일주했다. 한참을 달려 모슬포항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 길가에 아담한 미술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랑 미술관. 스쿠터를 세워두고 잠시 그림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중년의 사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자네, 낚시 좋아하는가?” 사내는 미술관의 관장님이었다. 그의 낚싯대를 빌려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았다. 회를 떠서 소주를 마시며 관장님 부부와 오래 담소를 나누었다. 두분은 늦은 나이에 만나 결혼했다고 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생각에 관장님은 아내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하나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화가인 아내를 위해 제주에 내려와 미술관을 지었다고 한다. 하루를 살아도 필사적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두분의 다정한 모습을 안주 삼아 얼큰하게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관장님은 해장을 하라며 전복이 세마리나 들어간 해물뚝배기를 사주셨다.

둘째 날의 만남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흑돼지 바비큐 파티.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고기와 술을 먹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술에 취해 숙소로 들어가고, 우리 아버지뻘의 아저씨 한분과 나만 남았다. 나의 친구 이야기 들려드렸더니 아저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의 딸도 내 친구처럼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아저씨께는 직장암이라는 병마마저 찾아왔다. 지금은 남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치료를 받으시고, 재활을 위해 기저귀를 차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안으시며 “절대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이 들어 점심 무렵에 일어났다. 아저씨는 힘내라는 쪽지를 적어두시고 한라산을 향해 떠나신 뒤였다.

바랑 미술관 관장님의 말씀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아저씨의 따뜻한 포옹은 위태로웠던 내 마음을 추스르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행복해야 하며, 내게 벌어진 모든 슬픈 일들을 내 책임으로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제주가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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