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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2 20:13 수정 : 2014.01.23 10:00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누군가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은 뭐든 사 주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떤 음식을 골라야 할까. 지난주에 나는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느 기업의 초대를 받은 열명과 일주일간 프랑스 남부를 돌며, 여행을 주최한 기업과 프랑스 관광청의 배려로 맛있는 프랑스 요리를 원없이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말로만 듣던 프랑스 요리의 생소하지만 고급스러운 풍미에 다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특별한 날에만 먹던 스테이크와 와인을 끼니마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그러나 다섯끼를 넘어가면서부터 우리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세계 3대 수프 중 하나인 마르세유의 부야베스는 내 입에는 괜찮았지만 몇몇 사람들은 한국의 생선탕이 먹고 싶어졌다는 얘기를 했다. 단지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거하게 차린 식사가 이어지다 보니, 일상적으로 먹던 간소한 식사가 그리워진 것이다. 마지막 날 파리 시내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으며 일행은 미슐랭가이드의 별점 스티커가 붙어 있는 식당보다 훨씬 맛있다고 탄성을 내질렀다.

물론 현지에서 프랑스 요리를 먹을 기회가 내겐 흔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 내내 프랑스 요리로 일관한 것은 결과적으로 현명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덕분에 나는 프랑스 요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잘난 척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미슐랭의 호평을 받은 정찬 식당이 항상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과 관련된 일화도 있다. 2007년 나는 친구들과 5인조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청소년월드컵 조직위원회의 만찬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장소는 무려 그랜드 하얏트 서울호텔의 그랜드볼룸. 관객 중에는 피파(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도 있었다. 공연을 마치자 피파 측은 우리에게 호텔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있으면 직원을 내려보내 계산해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주어진 도깨비방망이 같은 기회. 도대체 어딜 가서 뭘 먹어야 후회 없이 남의 돈을 쓸 수 있을 것인가! 돈도 있어 본 놈이 쓸 줄 안다고, 도대체 뭐가 비싼 음식인지 떠오르질 않아 공황 상태에 빠진 우리에게 기타리스트인 하헌재가 말했다. “야, 순댓국 먹고 싶지 않냐?” 멍청한 소리 한다고 하헌재한테 몰매를 퍼붓고 거리를 헤매다 결국 도저히 비싼 음식이 떠오르지 않아 돼지고기집에 갔다. 고기를 먹는 동안 계속 머릿속에선 순댓국만 떠올랐다.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걸 먹었어야 했다. 우리 중에 하헌재가 제일 똑똑했던 거다. 이 글 첫머리에서 던진 질문의 정답은 ‘그날 내키는 음식’이다. 미슐랭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 샌드위치가 당기면 샌드위치를 먹으면 된다. 돈이 그득한 지갑이 아니라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있다 해도 순댓국이 먹고 싶으면 순댓국을 먹는 거다.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사진 강백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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