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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2.19 19:59 수정 : 2014.02.20 10:09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혼자 나와 산 지 5개월. 이제 혼자 사는 일에도, 낯선 동네에도 꽤 적응이 된 상태이다. 적응이 가장 필요했던 것은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사 먹는 비중도 많고 배달 음식도 자주 먹지만, 나름 ‘청춘 식탁’을 연재하는 작가로서 되도록 해 먹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러니 장을 봐야 할 일도 많다.

처음에는 합정역에 있는 마트를 이용했다. 마트는 유혹의 공간이다. 물건 단가는 분명히 싼데, 계산대에 도착하면 계획에 없던 것들이 뭐가 그리 많이 쌓여 있는지! 구입한 물품들이 적힌 영수증은 겨울날 목도리로 써도 될 정도로 길게 늘어나 있었다.

어느 한가로운 오후, 동네 구석구석을 거닐다 나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작은 찻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재래시장이었다. 이름하여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아치형의 입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양옆에서 들리는 왁자지껄, 그야말로 생기로 들끓는 시장통의 소리! 시장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가던 서울 강동구의 ‘양지시장’과 ‘암사시장’의 향수가 느껴졌다. 엄마랑 자주 사 먹던 어묵 국물의 뜨거움도 반가웠고, 사과를 사면 귤 한 개를 같이 넣어주는 과일가게 아줌마의 손길도 정겨웠고, 어릴 때는 그렇게 싫던 생선가게의 비린내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분위기뿐만 아니다. 시장에서는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었다. ‘특가상품’이나 ‘1+1’에 현혹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요구할 수 있다. 두부 반 모, 달걀 다섯 알같이. 무는 한 개씩만 판다던 채소가게 아줌마에게 너스레를 떨면 아줌마는 어디선가 무 반 토막을 들고 오신다. “총각 예쁘니까 이건 그냥 줄게. 자주 와.”

장을 보다 보면 허기가 진다. 시장은 그야말로 뷔페다. 떡볶이, 어묵, 순대, 왕만두 등. 수많은 먹거리들 중 망원시장의 자랑이라 하면 내 생각에는 2500원짜리 칼국수(사진)다. 2500원,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생수 한 병을 사면 얼추 그와 비슷한 가격이 나온다. 채소와 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부담 없이 앉아 칼국수 한 그릇을 먹는다. 청양고추 양념장을 풀어 칼칼한 국물에 담긴 못생긴 손칼국수 면발을 후루룩 마시듯 들이켜면, 장을 보느라 쑤시던 발바닥까지 그 뜨거움이 전해지는 것 같다. 예전에 어느 백화점 8층 식당가에서 8000원을 주고 사 먹은 맛없는 칼국수가 생각나 분노하기도 했다.

망원시장의 닭강정 집도 명물이다. 5000원짜리 양념 닭강정 한 통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1만5000원짜리 프랜차이즈 치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고의 맥주 안주이기도 해서 배 터질 때까지 맥주를 마실 각오를 해야 한다. 연예인이 사 먹고 갔다는 펼침막이 붙어 있는 후발주자가 바로 옆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진짜배기는 안경 쓴 아저씨가 닭을 볶고 계신 원조집이다.

마트를 이용하지 말고 재래시장을 이용하자는 건 아니다. 마트는 시장에 없는 물건이 많고, 이용이 편리하며,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할 때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은 마트보다 좋은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공간들을 충분히 상호 보완적으로 이용하면 된다.

얼마 전부터 나는 재미있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함께 감자탕을 만들면서, 국물이 끓는 동안 내가 노래를 부르고 수익금으로는 소년소녀가장들을 돕는 의미있는 공연이다. ‘쿠킷’이라는 젊은 기업과 함께하는데, 이 친구들은 모든 식재료를 재래시장을 통해 구입하여 레시피와 함께 고객에게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밀려 재래시장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좀더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치있는 공간이니까.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사진 강백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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