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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30 19:18 수정 : 2014.07.31 08:40

사진 강백수 제공

[매거진 esc] 백수의 청춘식탁

우리 큰누나인 진주 누나가 시집을 갈 때 나는 축가로 이적의 ‘다행이다’를 불렀다. 그 곡은 원래 내가 자주 부르는 축가 레퍼토리는 아닌데 그날은 꼭 그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누나가 시집을 가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진주 누나는 내 친누나는 아니다. 효자이신 아버지 덕에 나는 어려서부터 거의 매주 할머니 댁에 가서 사촌들을 만났다. 위아래로 여덟명의 사촌들이 거의 친형제자매처럼 지낸 셈이다. 그중에서도 나보다 아홉살 많은 진주 누나, 여섯살 많은 영주 누나 자매는 집안 사정상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얼마간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기도 해 거의 친누나나 다름없다.

영주 누나는 우리들의 똑 부러지는 대장이었고, 진주 누나는 조금 괴짜였다. 어려서부터 내 기저귀도 갈아주고 포대기에 업어서 재우고 했던 영주 누나와는 달리 진주 누나는 엄마가 “진주야, 작은엄마 나가니까 민구 밥 좀 챙겨 줘” 하며 두고 간 2만원을 혼자 날름 먹고 내게는 짜장라면을 끓여주던, 그러고는 짜장라면에 달걀 들어간 것 먹어본 적 있느냐며 온갖 생색을 내던 이상한 누나였다.

누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록’과 ‘술’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20대 초반이던 누나는 당시 인디 문화가 태동하던 홍대 주변을 집보다 자주 갔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시디플레이어로 일본 밴드 ‘라르크앙시엘’(L’Arc-en-Ciel)을 듣고 있을 때, 누나는 내 한쪽 이어폰을 자기 귀에 꽂더니 사내자식이 이런 걸 듣느냐며 재생되고 있던 시디를 던져버리고 자기가 아끼는 시디를 넣어주었다. 바로 ‘메탈 갓’(Metal God)이라 불리는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라이브 앨범이었다. 그 뒤 나는 록 음악에 매료되었고 과거 록밴드들의 반항기 어린 눈빛을 흉내 내는 등 중2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날 누나는 영주 누나와 나, 나보다 한살 많은 고종사촌 형을 끌고 나갔다. 목동에 있던 어느 바에서 나는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누나가 마시고 ‘키핑’해 두었던 보드카. 남자라면 록 정도는 들어야 하고 술 정도는 마실 줄 알아야 한다며. 내 앨범 1번 트랙 ‘하헌재 때문이다’에 밝혔듯 내가 밴드를 하는 건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잘못 만난 탓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주 누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다. <백수의 청춘식탁>에 허구한 날 술 얘기가 나오는 것은 대부분 누나의 책임인 것 같다.

그러던 누나가 시집을 간 것이다. 그것도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짱구’를 닮은 연하의 이공계 출신 매형을 만나서. 시집을 가서 누나는 변했다. 누나네에 모이는 날이면 영주 누나를 심하게 부려먹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상다리가 부러지게 직접 음식을 하질 않나, 생전 안 하던 집 청소를 하질 않나, 직접 담근 김치를 자랑하질 않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질 않나. 우리 누나가 맞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에 놀러 갔을 때는 자취하는 동생 먹인다고 밑반찬 8종 세트를 몇시간 걸려 완성해서 예쁘게 포장까지 해주었다. 멸치볶음과 동그랑땡은 술안주로 홀랑 먹어버렸지만 그 또한 누나가 나에게 술을 가르쳐서 비롯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소시지볶음, 오이소박이, 총각김치, 달걀장조림 등은 밥반찬으로 유용하게 잘 먹었다. 록 음악이나 술은 당시의 나에게 절실하지 않았건만 기어이 전파를 해주더니, 비로소 정말 절실한 밑반찬을 건네는 우리 누나를 보며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싶었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변화시킨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밑반찬 8종 세트를 먹으며, 예쁜 조카 시은이를 낳은 영주 누나처럼, 진주 누나도 얼른 건강한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는 내가 록을 들려주고 술을 가르쳐야지.

강백수 인디뮤지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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