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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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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에 대한 예의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계란 국장(國葬)이라도 치르는 걸까. 아침이면 독일인 베른트는 구멍이 세 개 뚫린 기계를 찬장에서 꺼낸다. 오직 계란만 앉을 수 있는 구멍이다. 그 옆엔 과학 실험실에서나 봤던 비커 모양 컵이 있는데 눈금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계란 개수, 반숙이냐 완숙이냐에 따라 따라야 할 물의 양을 보여주는 거다. 계란을 삶는 게 아니라 조립할 모양이다.
‘삑~’ 다 익었으니 모셔가라고 기계가 호령한다. 높은 온도에 계란이 터지지 않게 미리 껍데기에 옷핀으로 작은 구멍도 세공해 넣은 뒤다. 이제 계란만을 위한 의자에 앉힐 차례다. 계란 위에 옷도 입힌다. 베른트는 닭 모양과 곰돌이 모양 계란 옷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날 기분에 맞춰 고심해 고른다.
이제 그렇게 모신 계란의 모가지를 칠 차례다. 베른트는 나이프로 잘라 먹는데 레스토랑 같은 데 가서는 그렇게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매너가 아니란다. 예의에 맞는 행동은 숟가락으로 톡톡 쳐 계란 머리통을 깨 먹는 거란다. 속살은 곧 죽어도 계란 전용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티스푼으로 먹으면 안 되냐니까 맛이 다르단다. 본인도 사실 모르면서 그냥 주장하는 거 같다. 다르긴 뭐가 다른가. 내가 편견 없이 수십 개 그렇게 퍼먹어 봤는데 똑같다.
계란을 먹는 거보다 쉬운 일이 어디 흔한가. 사이다만 있으면 그만인걸.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일마저 꼭 이렇게 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어쩌다 독일에 살게 된 지 8개월째, 가장 큰 문화 충격은 ‘계란 문명’이었다.
베른트의 손바닥 부엌엔 국자만 5개다. 생선을 굽는 석쇠는 꼭 생선 모양이어야 하나 보다. 이 많은 ‘특수 목적용’ 물건과 기계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한번은 방에 나방이 들어왔는데 베른트가 기겁을 했다. 천장이 높아 사다리를 가져온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와중에 신발을 갈아 신고 있다. 혹시 미끄러질지 모르니까 사다리 올라가기에 알맞은 밑창이 깔린 걸로 꺼내왔다는 거다. 밑창별로 별별 신발이 다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대체 나방을 잡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아래층 남자 토마스는 ‘쓸데없이 정교한 물건’ 중독증인 거 같다. 하루는 허리를 조금도 구부리지 않고 꽃에 물을 줄 수 있는 물뿌리개라며 자랑스럽게 보여주는데 남의 돈이지만 아까웠다. 그 집에 어차피 화분이라곤 두 개뿐이다. 그 두 개 화분, 하필이면 평평한 데 다 놔두고 테라스 두 개 기둥 위에 아슬아슬 서 있다. 토마스의 자랑거리다. 그가 손수 만든 특수한 철사 구조물이 화분 아래쪽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태풍이 불어도 떨어질 염려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짜 끄떡없었다. 다만 철사 고문 때문인지 꽃은 다 바짝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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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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