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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3 20:40 수정 : 2013.07.24 10:15

김소민 기자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여성 룸메이트 구함. 방 2개. 기차역까지 5분 거리. 거주자는 독서 즐기는 남자임. 조건은 에프카카(FKK) 공동체.’ 독일어로 ‘프라이쾨르퍼쿨투어’. 말하자면 알몸주의자란 거다. 방은 따로, 화장실과 부엌은 같이 쓰는데 집에선 홀딱 벗고 다니자는 제안이다.

삐걱삐걱. 그의 집은 독일 쾰른 서부 기차역 주변 오래된 건물 3층에 있었다. 낡은 계단은 관절통을 앓는지 비명을 질러대고 복도는 낮에도 컴컴했다. 나름 센서가 달린 전등은 사람이 더듬더듬 지나간 뒤에야 놀래는 게 기능인지 난데없이 불을 밝혔다. 그냥 튈까.

진짜 오라고 그럴 줄은 몰랐다. 방은 안 구할 거고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메일을 보냈는데 덜컥 놀러 오란다. 놀러 오라는데 안 가기도 그렇고 해서 가겠다니까 친구는 제정신이냐고 그런다. 홀딱 벗고 있으면 어쩔 거냐는 거다. 갈팡질팡하다 보니 어느새 알지도 못하는 동네 낡은 층계에서 오금이 저리고 있었다.

늦었다. 이 ‘밟지 마 아파’ 복도 덕에 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다. 문 앞에 키 190㎝는 될 듯한 거대한 남자가 서 있었다. 에른스트(37·사진)다. 다행히 옷 입고 있다. 헤벌쭉 웃는 그는 동물 죽는 걸 못 봐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이다. 20평 남짓한 집에 살림은 초록색 소파, 식탁, 그 위에 쌓아올린 서류 더미, 친구가 그렸다는 그림들로 단출했다.

피아르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따지자면 4살 때부터 알몸주의자였을 거라 했다. 부모님은 투표 때 꼭 보수 정당 찍는 사람들이었는데 옷 입는 것만은 급진적 자유주의자였다. 그가 기억하는 한 4살 때부터 매년 여름이면 프랑스 서남부 몽탈리베 나체촌으로 두 달씩 휴가를 갔다. “그 동네를 생각하면 소나무 향기가 나.” 슈퍼마켓, 책방 있을 건 다 있는데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다 발가벗고 다녔다. 수세식 변기가 없는 그곳에선 파도가 엉덩이를 만졌다. “병들고 뒤틀리고 젊고 늙고. 이상할 것도 신비로울 것도 없는 수많은 몸을 봤지.”

몽탈리베에서 여름을 보낸 30여년 동안 그의 몸도 변했다. 사춘기 때는 키만 멀대처럼 자라 부끄러웠다. “텔레비전 속 완벽한 몸하고 비교하니까 자기 몸이 볼품없지. 보통 사람들 보다 보면 내 몸도 뭐 괜찮지 그렇게 돼.”

회사 동료들은 그가 알몸주의자인지 잘 모른단다. 친구가 아니면 굳이 밝히지 않는 까닭은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알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 알몸 수영장 옆을 지나며 동료들이 무심코 뱉은 말을 기억한다. 노출증이라거나 다 한번 하고 싶어 저런다거나….

그런데 또 이런 오해 사가며 굳이 벗을 건 뭔가? “어떤 사람들한테 알몸은 곧 섹스겠지. 나한텐 자유야. 생각해봐. 왜 어떤 부분은 가려야 하는 것이 됐는지. 성기나 무릎이나 다 몸인데 말이야. 교육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내 머릿속에 들어와 가려라 마라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 알몸이 자유이기만 하면 또 굳이 여성 룸메이트를 구할 건 뭔가? 남자, 여자 룸메이트로 같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이 다 살아봤는데 대체로 여자들이 더 깨끗하고 말도 잘 통한다는 게 이유였다. “알몸 공동체라고 추운데도 꼭 벗자는 거 아니야. 상대가 싫어하는데 알몸 보여주겠다는 것도 아니야. 벗고 싶을 때 벗는 자유는 서로 지켜주기로 합의하자는 거지.”

그는 쾰른 주변에 알몸으로 수영할 수 있는 곳들을 알려줬다. 엄마 앞에서도 홀딱 못 벗는다니까 딱 30분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옷 벗고 풀밭에 누우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 안 해보면 몰라.” 듣다 보니 점점 까짓것, 한번 사는 인생인데 한번 해볼까 싶어진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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