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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17 18:54 수정 : 2013.07.24 10:15

김소민 기자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지난 5일 영화 <파파도풀로스 아들들>이 시작하기 전, 한 여자가 무대에 섰다. “오늘 하이케 생일이죠.” 난데없이 생일 축하 노래를 같이 부르잔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엉겁결에 웅얼웅얼 따라 했다. 쿠어극장. 독일 헤네프시의 단관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 심상치 않은 건 자리 배치도 그랬다. 표에 좌석 표시가 없다. 대신 손으로 얼기설기 짠 목도리를 수북이 쌓아 놨다. 그중 한 개를 앉고 싶은 자리에 놓으란다.

쿠어극장은 75살이다. 입구 전광판은 빨강 파랑색 글씨를 오려 칸에 줄줄이 끼워 넣은 것이다. 그 글씨들 뒤편 형광등이 부들부들거리다 켜지면 동네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 늙은 극장으로 온다. 매표소 칸 안엔 점원 한 명이 심드렁하게 앉아 있다. 낡았지만 공들인 극장 안 카페엔 <로키호러픽처쇼> <스타워즈> 따위 옛 포스터들이 졸고 있고 그 앞엔 1938년부터 온갖 풍파를 지켜본 원조 영사기가 나무처럼 서 있다. 나이가 들면 물건도 숨을 쉰다.

댄스홀로 문을 열었는데 무성영화가 들어오면서 극장으로 변신했다. 1938년엔 <유대인 가면을 벗기다> 따위 나치 선전물을 틀어야 했다. 2차 대전 끝난 뒤 미군, 영국군 손에 차례로 넘어갔다가 원래 주인인 벨링하우젠에게 돌아왔다. 쿠어극장한테 전쟁보다 무서운 건 신식 영화관들이었다. 자동차로 15분 거리 지크부르크에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결국 극장주가 손들었다. 2003년 지역신문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당신이 어릴 때 만화영화 <개구쟁이들>을 보고, 청소년 때 맨 뒷좌석에서 연인 손을 만지작거리던 곳, 그리고 지금 당신 아이들과 같이 <반지의 제왕>을 보는 그 극장이 문을 닫는다.”

그러자 떴다. ‘쿠어극장의 친구들’이란 협동조합이다. 40여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회원이 1200여명이다. 이 회원들은 돈 내고 일한다. 여기 고쳐 놓으면 저기가 삐끗하는 노쇠한 건물 닦고 조이고 하는 게 다 이들 몫이다. 주황색 상영관과 어울리는 녹두색 커튼, 고풍스런 짙은 보라색 카펫도 직접 맞춰 넣었다. 대체로 안 팔릴 것들로 프로그램 선정도 한다. 목도리 줬던 사람, 생일 축하 종용한 여자 모두 조합원들이다. 이 늙은 극장은 이들에게 ‘내 새끼’다.

회원인 30대 공무원 쇠른은 퇴근하고 할 일 없으면 극장에 온다.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 커튼 갈고 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어. 집도 이 동네니까 심심하면 와보는 거지.” 쇠른은 영사기도 잡는다. 2층 영사실엔 1958년산 골동품이 있는데 장식이 아니다. 여름이면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무성 공포영화를 트는데 그때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다. 그 옆 신식 영사기는 파일만 꽂아놓으면 끄떡없는 매끈한 박스 모양인데 이 골동품은 꼬불꼬불 톱니바퀴를 따라 필름이 화면에 비춰질 때까지 먼 길을 돌아간다. 옆에 정성 들이는 사람이 없으면 안 돌아가는 새침한 물건이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영화 <파파도풀로스 아들들>은 뻔한 얘기였다. 잘나가던 기업 회장이 금융위기로 망한 뒤 어린 시절 부모님이 하던 구멍가게만한 레스토랑을 다시 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줄거리다. 중요한 대사는 혹시 관객이 눈치 차리지 못할까 몇 번 반복했다. 그중 하나는 이랬다. “성공은 행복의 총량이지.”

한참 졸고 난 나탈리에게 왜 이 극장에 오느냐 물었다. “귀엽잖아.” 이 꽃할배 극장에서 올여름엔 무성영화를 볼 거다. 독일어까지 없다니 왜 이렇게 좋냐.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독일 연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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