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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기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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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징하게 오래됐당께~.” “징하게 오래돼부렀어~.” 독일 본에 있는 공원 라이나우에, 한번 네 맘대로 뒹굴 테면 뒹굴어 보라는 듯 거칠 것 없이 호방하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평균나이 45살은 돼 보이는 3000여명이 쾰른 사투리로 떼창을 했다. 이 지역 사투리로 노래하는 록밴드 ‘바프’ 콘서트에서다. 웃기자는 밴드가 아니다. 37살 된 이 밴드의 리더 볼프강 니데켄은 적어도 이 지역 사람들에겐 독일의 밥 딜런이다. 1992년 쾰른에서 열린 대규모 반인종차별 콘서트 ‘벌떡 일어나 떠들자’를 주동했던 밴드다. 특히 그때 불렀던 ‘크리스탈나흐트’가 나오자 아줌마 아저씨들은 달렸다. “그 밤, 크리스탈나흐트(나치가 유대인을 대규모 습격했던 날), 갸들에겐 외국인은 암댕이고, 동성애자는 범죄자였잖여… 힘쎈 놈만 살고 돈이 지 맴대로 하는 시상, 유전자로 너는 살고 너는 뒤져라 하는 시상, 그런 시상이 좋다냐? 그라문 허구헌 날 크리스탈나흐트제” 점점 고조되는 드럼 소리에 42살 은행원 니코는 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 질렀다. “그런 시상이 좋다냐 좋다냐~.” 50살 코니가 밴드 바프 콘서트에 처음 갔을 때 17살이었다. 당시 소녀들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매던 스카프를 우르르 따라 맸다. 뭔 큰 뜻을 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유행이었단다. ‘바프’의 노래들로 코니는 그 시절 체크무늬 스카프 소녀가 된다. “자네는 마술쟁이여. 나한테 뭔 짓을 했당가.” 이 노래가 나오자 머리가 한창 벗겨져 한 올이 아쉬운 마크가 헤드뱅잉을 했다. 16살 때 짝사랑 클라우디아를 만나는 중인 거다. 춤동아리 친구 클라우디아, 끝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붙여봤더랬다. 50살이 내일모레인데 아직도 클라우디아를 떠올리면 아련하게 아쉬워지는 까닭이다. 특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억 속의 한 순간이 순식간에 해동돼 그를 덮친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비가 내렸다. 고맙게도 클라우디아는 우산이 없었다. 같이 우산을 쓰고 가는 내내 마크는 감히 클라우디아 쪽에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 한쪽 어깨가 다 젖는 동안 우산대를 잡은 다른 손엔 클라우디아 볼에서 번져온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 온기만으로도 갈비뼈가 뻐근했다. 사라도 있었다. 19살 때 직장에서 만나 혼자 가슴 두근거렸던 여자였는데 어느 날 단둘이 영화 볼 기회가 생겼다. 마크는 상영중인 모든 영화를 해부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볼까? 아냐 너무 노골적이야. 액션을 볼까? 아냐 너무 분위기 없어. 별별 변수를 깐깐하게 따지다 고른 게 코미디였는데 악수였다. 그렇게 안 웃기는 것도 재주다 싶을 만큼 안 웃겼다. 사라는 미소조차 한번 날려주지 않았다. 쭈뼛쭈뼛 영화관 밖으로 나오니 햇살은 이 서먹한 관계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겠다는 듯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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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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