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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1 19:40 수정 : 2013.09.12 15:40

김소민 기자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독일에서 만난 이란인 친구 아자르는 산다람쥐다. 허파가 박지성급이다. 한번 따라갔다 허파꽈리가 허파호박처럼 부풀어 오르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떴다 하면 25㎞는 가야 뭔가 좀 장딴지 쪽에 느낌이 오는 32살의 무서운 여자다.

그 실력은 다 어릴 때부터 훈련으로 다져진 거다. 아자르의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호메이니 혁명 뒤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졌는데 그때 용케 살아남았다. 삼촌은 망명길에 올랐다. 신을 믿지 않는 아버지는 몸을 낮췄다. 직장에서 이슬람 신심을 의심받아 승진에서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주말이면 어린 딸 셋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 꼬마들에겐 최소한의 물과 식량만 담은 보퉁이가 쥐어졌다. “저 모퉁이만 지나면 내려갈게.” 그게 하루 종일이었다. 딸들이 징징거릴 때면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가 언제 도망가야 할지 모르니 준비를 해둬야지.” 아자르의 아버지는 아자르가 여자답지 않다고 혼낸 적이 없다. 질질 울며 떼쓸 때만 단칼에 잘랐다. “눈물 닦고 또박또박 이야기해.”

내가 아자르를 우러러보게 된 건 연애 때문이다. 연애 경험으로 따지자면 내가 이슬람 원리주의자고 아자르는 할리우드 스타다. 이런저런 연애로 맞춰봐 그는 자기가 대충 어떤 모양의 인간인지 아는 거 같다. 마지막 이란인 남자친구랑 헤어진 까닭 가운데 하나는 춤 때문이었단다. 파티에 간 아자르가 어떤 남자랑 춤을 췄는데 남자친구가 성질을 부렸다. 춤추러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아자르는 끝내기로 결심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마다 혹시 남자친구가 싫어할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추고 싶으면 출 거야.”

아자르를 사부로 모시기로 결정한 건 내가 온종일 졸아 짜디짰던 어느 날이었다. 한 방송국 스튜디오를 쓸 일이 있었는데 독일인 기술자가 도우미로 붙었다. 도움 받는 처지니 기분 띄워 줘야 한다는 강박에 우왕좌왕 똥줄 타는 강아지 신세가 됐다. 노래 만드는 게 취미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1세기 베토벤을 알현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돌아오는 반응은 이 여자 왜 이래였다. 내가 뭘 잘못했나? 다시 그를 내 머릿속 인간 카테고리 가운데 재분류해 그런 타입에게 딱 어울릴 만한 우스개를 나름대로 시도해봤지만, 소리 안 나는 방귀처럼 힘없이 공기만 더럽혔다. 피곤한 하루를 마치며 아자르에게 그 독일인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몰라 맞춰주기 힘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참 인생 힘들게 사네. 일단 남 기준을 네가 알 수도 없고 그게 또 사람마다 다 다를 텐데 그 기준에 맞춰 살려면 얼마나 힘들어. 난 내가 내 기준에만 맞으면 그걸로 됐어.”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이란 사람이라곤 만나본 적 없고 이란에 대해 공부해본 적도 없는 나는 이란 여자라면 다 부르카 두르고 눈 바닥에 깔고 다니는 줄 알았다. 무슬림 사회 여성은 모두 핍박당하는 희생양, 서구 사회가 안타까워해 마지않는 동정의 대상쯤으로만 생각했다. 하나같이 열등감을 내면화해 수동적일 거라 내 마음대로 지레 짚었다. 단순 명쾌했던 나의 이란을 아자르가 죄다 흔들어 놨다. 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는 불온한 계집애한테 반해 버린 거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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