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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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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집이 살아있다. 눈 깜짝할 사이, 똥 무더기를 싼다. 일어난 각질처럼 먼지가 구석구석 허옇다. 돌봐주지 않았더니 빈 병들을 도열해 시위중이다. 집이 감염되기 전에 시중들기로 했다. 골동품이 다 된 병 무더기를 버리려고 챙겨 나서는데, 함께 사는 독일인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가로막는다. “일요일엔 병 버리면 안 돼.” 신이 노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독일에서 병 분리수거는 색깔별로 한다. 갈색, 투명, 초록색을 컨테이너 같은 철제 통에 뚫린 각각 다른 구멍에 떨어뜨린다. 구멍과 바닥 사이가 꽤 멀어 병을 넣으면 쨍그랑 깨지는데 독일인이 가로막은 까닭은 그 소리 탓이다. 일요일엔 사람들이 쉬어야 하니 방해해선 안 된다는 거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온 날 저녁 7시쯤 3층으로 낑낑거리며 짐을 옮기는데 도와주던 독일인이 태클을 건다. “발끝으로 걸어. 소리 안 나게.” 이웃들 귀에 내장돼 있을 것 같은 특수보청기를 빼주고 싶었다. 저녁이나 주말은 그렇다 치자. 낮에도 집에서 조용해야 할 시간대가 있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다. 옆집 사람이 낮잠 잘 수도 있다는 거다. 콜롬비아인 후안은 이 시간대에 기타를 쳤는데 곧 분노의 드럼 소리가 합류했다. 아래층에서 빗자루로 천장을 쾅쾅 쳐댄 거다. 그런데 신기하게 작은 소음에도 뇌 파열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굴던 사람들이 유독 주말 기차에서는 돌변한다. 특히 도심과 외곽이 연결되는 기차는 그동안 억눌렸던 소음 유발 충동을 경쟁적으로 발현하는 장 같다. 맥주 병나발은 이 경연장에 빠질 수 없는 소품이다. 지난 11일 밤 11시께 쾰른에서 본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40대 남녀 네댓명이 불콰했다. 음담패설을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후보 연설처럼 고래고래 해대는데 자기가 한 말에 스스로 터뜨린 폭소가 화통하니 장군감이다. 안 들으려 해도 안 들을 수 없다 보니 일행이 아닌 사람도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썰렁한 농담이 지겨웠는지 내 뒷자리 청년이 음악으로 맞불을 놓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볼륨이 어찌나 빵빵한지 그 청년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노가리 안주라도 시켜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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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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