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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30 19:51 수정 : 2013.10.31 13:47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 살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독일에서 사귄 친구, 파키스탄인 임란(28·왼쪽)은 한국방송 라디오 사서함 주소를 줄줄 외웠다. 파키스탄 바하왈푸르 근처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는 외국 라디오 영어 방송을 듣는 게 취미였다. 집 안에서 전파를 잡기 어려웠던 시절, 12살 임란은 지붕에 올라가 엄마가 내려오라 닦달할 때까지 세월아 네월아 세상 라디오를 들었다. “처음에 대만 방송이 잡혔을 때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 창립 50주년 때는 자기 돈을 털어 축하 플래카드를 만들고 친구들 50명 가까이 집으로 초대해 치다꺼리했던 누나들한테 두고두고 학대를 당했다. 정작 도이체벨레 방송사는 임란이 그 야단법석을 떨며 생일을 축하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컵, 볼펜, 배낭 등 외국 방송사에서 탄 경품들은 임란의 보물 상자 안에 쌓여 있다.

그의 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임란은 임란이 좋아 죽고 못 사는 사람이다. 학교 졸업장, 정체 모를 증명서들…. 온갖 자질구레한 성취들로 빼곡하다. 사실 임란의 가장 큰 성취는 장가간 건데, 똑똑한 파키스탄 부인과 사는 덕에 집단수용소를 방불케 하는 기숙사를 피해 그래도 문명 세계에 가까운 가족용 방을 얻었다. 하여간 7평이 될까 말까 한 그 집에 가면 다른 방 따윈 없기 때문에 피신할 수도 없이 그의 모든 성취에 얽힌 사연을 꼬박 들어야 한다. 그 기나긴 설명을 들으며 임란의 순도 100% 나르시시즘에 반하고 말았다. 어떤 누구와도 자신을 비교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나르시시즘의 절대 경지에 임란은 올라 있었던 거다.

그러니 그는 세상에 자기를 보여주고 싶고 세상을 보고 싶어 안달 났다. 수업은 들락날락 빼먹으며 온갖 공짜 밥 주는 콘퍼런스는 다 쫓아다닌다. “왜 안 가?” 생각해보면 또 꼭 뭘 안 해야 할 이유는 뭔가 싶어 주섬주섬 임란을 따라 나서게 된다.

어느 날엔 자기 피아르의 시대이니 반드시 블로그를 하라며 한참 설교를 늘어놓더니 자기 블로그를 보여주겠단다. 역시나 임란 사진 퍼레이드다. 이 블로그에 하루에 몇 명이나 들어오는지 아느냐니까 자신 있게 대답한다. “아무도 안 들어와.” 농담하는 표정이 아니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아무도 임란을 슬픔에 빠뜨릴 수 없다. 자기 에세이는 완벽하다고 주장하던 그, 겸연쩍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게 뭐 대수겠는가. 동문서답의 제왕이라 친구들도 가끔 임란을 심심풀이 땅콩 삼는다지만 그래서 뭐 어쩔 건가.

그는 하여간 바쁘다. 누가 오란다고 가는 건 나르시시즘계의 졸개들이나 하는 짓, 임란은 초대받지 않아도 그냥 간다. 새해엔 파키스탄 과자를 구워 자기가 어릴 때부터 엽서 보냈던 ‘도이체벨레’ 사람들에게 돌렸다. 베를린 여행 갔을 때는 숙소 아침 뷔페에 오른 빵과 잼을 비닐봉지 속에 싹쓸이해 점심때 배곯은 친구들에게 나눠 먹였다. 베를린 관광 명소인 의회 꼭대기 유리 돔 안에서 임란이 배급해준 빵조각을 허겁지겁 먹으며 나는 전쟁통에 잃어버린 오빠를 다시 만난 피난민 같은 감격을 느꼈다.

자꾸 같은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최면처럼 진짜 임란이 나중에 뭔가 대단한 사람이 돼 있을 거란 걸 믿게 됐다. 최소한 묘비에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거 같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은 나 자신과 함께 세상 구경 한번 잘했네!’

김소민 <한겨레>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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