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니발 장면.
|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카니발, 피해야 할 것은 직장 상사다. 독일 쾰른 주변,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2월이 왔다. 동네마다 1000명 넘게 들어가는 대강당에선 카니발 공식행사가 열리는데, 비닐같이 얇은 하얀 타이츠를 신은 채 엉덩이에만 분홍 깃털을 달고 한 마리 홍학이 되는 배불뚝이 중년 남자쯤은 예사다. 이런 지역행사 첫째 줄 자리는 몇십만원 족히 드니 지역 유지 차지다. 은행 지점장도 그중 하나, 수하 은행원들 몰고 지역 인사들과 눈도장을 찍는다. 미쳐야 제맛인 이 시절에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앉은 직원들은 미칠 노릇이다. 은행원 우버는 해마다 이 기간에 맞춰 휴가 가버렸는데, 올해엔 딱 걸려 끌려갔다. 그의 동행인이 된 나까지 덩달아 검은 정장 빼입었다. 우버는 그래도 카니발이니 너무 각 잡으면 재미없는 인간으로 보일지 모른다며 나보고 목에 거대한 빨간 리본을 매란다. 웃기지도 진지하지도 않게 입사면접 온 미키마우스 차림이 됐다. 공식 행사엔 우선 카니발 왕과 공주가 등장한다. 동네 이름을 선창하면 다들 일어나 ‘알라프 알라프’ 외친다. 이어 치어리더들을 한바탕 공중에 던진다. 그다음은 카니발 왕과 진짜 시장이 실랑이를 벌인다. 매년 똑같다. 내 맞은편 지점장 부인 얼굴을 보니 부부싸움을 할 것 같다. 지점장쯤 되면 부부 동반으로 이런 모임을 한 달에 20여개 끌려다닌다고 하니 퉁퉁 부은 게 이해된다. 사투리 밴드들이 나오자 은행원들도 광란 관객들과 함께 일어나 몸을 좌우로 흔드는데 표정은 고등학교 수리영역시간 같다. 더워서 재킷을 벗으려는데 우버가 눈치 주며 쿡쿡 찌른다. 벗으면 예의 없어 보인다는 거다. 뒤쪽 자리엔 홍학맨이 깃털 뽑히도록 방방 대는데 나는 재킷도 못 벗고 시집살이다. 그래도 그날 우버의 기분은 그리 꽝은 아니었다. 알든 모르든 옆 사람 팔짱 끼고 지역 찬가 부르기 일쑤인데 화장실 가는 길에 엉겁결에 시장 팔짱을 끼게 된 거다. 그는 싫어하는 동료 프란츠가 시샘할 거라며 은근히 즐겼다. 역시 꼬리 자리가 제맛이었다. 지난 8일 두 번째 행사 때는 동네 친구들끼리였다. 싼값에 맨 끝줄 차지했는데 옆엔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얼룩말이 앉아 있었다. 헐크 같은 남자는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보는 맛이 아슬아슬하다. 팔뚝에 힘만 줘도 옷자락이 터져나갈 거 같다. 나도 광대 옷을 입고 얼굴 전체 뵈는 데 없이 색색으로 칠해버렸더니 뵈는 게 없어졌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 최고점은 ‘막가스’라는 밴드가 찍었다. 한국말로 더 느낌이 오는 동네 밴드다. 생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자라는 베이스 주자는 빨간 핫팬츠 차림이다. 기타리스트는 스카이콩콩 같은 걸 타고 무대에 등장했다. 밴드가 ‘치키치키 차카차카’ 하면 관객은 알아서 ‘호이호이호이’라고 답해야 한다. 여자 관객하고 남자 관객하고 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 함성 내기도 벌인다. 퇴행을 북돋우는 게임이다.
|
김소민 독일 유학생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