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30 19:39
수정 : 2014.05.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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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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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독일 쾰른 폰타네 거리, 볕 좋은 날이면 개, 비둘기, 사람 벤치에서 꾸벅꾸벅 조는 보통 주택가다. 지난 19일 이 한가한 동네 몇몇 발코니엔 ‘칼레를 위한 모두’(알레 퓌어 칼레, alle fuer Kalle) ‘칼레는 여기 머무른다’ 펼침막이 펄럭였다. 칼레는 4층 꼭대기 68㎡(19평)짜리 집에 살던 카를하인츠 게리크(54)의 애칭이다. 이 동네에 이제 칼레는 없다. 3일 전 강제퇴거 당했다.
“미치게 감동적이었어요.” 쫓겨나며 칼레는 이렇게 말했다고 지역신문 <익스프레스>가 전했다. 그날 경찰은 작정했다. 16일 100여명이 새벽 2시부터 칼레 집으로 통하는 거리를 막았다. 이미 두 번 실패했다. 지난 2월20일엔 이웃을 포함한 시위대가 빨랐다. 새벽 5시께부터 300여명이 칼레 집 앞에서 빵을 돌려 먹었다. 중년 커플은 바이올린을 켰고 젊은이들은 드럼을 쳐댔다. 동네 할머니들까지 의자를 끌고 나와 앉았다. “알레 퓌어 칼레!” 새까지 울어댔다. 아침 7시 작전은 뒷북으로 끝났다.
시위대보다 빨리 일어나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진을 쳤는데 웬걸 귀신같은 수십명 또 층계참에 서로 팔을 엮고 앉아 있다. 새벽 한시께 나온 잠 없는 사람들, 칼레의 이웃과 이웃들이 재워줬던 운동가들이었다. 아침 7시께부터 팔 한쪽씩 잡혀 한명씩 끌려나왔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누군가 소리쳤다.
칼레는 이곳에서 32년을 살았다. 입주 때만 해도 월세가 그리 비싸지 않았다. 교통 좋은 시내이다 보니 매년 올랐다. 월세 인상폭 상한선 있어도 지칠 줄 모르고 오르는 월세 앞에 장사 없었다. 버티는 데 한도가 있어 오래된 이웃 하나둘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최근 칼레도 집주인한테 통보를 받았다. 이유도 없이 오래된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니 주인은 자기가 들어와 살 거라 우겼다. 내부 개조 뒤 비싸게 팔아 수익 남기려는 속셈, 하나둘이 아니었다. 칼레는 거짓말 말라며 소송을 걸었다. 집주인이 인터넷에 매물 광고까지 한 증거물도 내밀었는데 법원은 집주인 손을 들어줬다. 이웃들은 펼침막을 자기 집 앞에 내걸기 시작했다.
“돈 있다고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 칼레는 방송사 베데에르(WDR·서부독일방송)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도시에 정의를’이 조직된 것도 이맘때였다. “집은 모두가 필요하지. 세입자를 돈벌이 희생자로 삼지 마.” 홈페이지에 적혀 있다. 첫 모임 참가자는 8명이었는데 두번째 모임부터 부쩍 자랐다. 경찰이 떼어내려 할 때 서로 붙어 있기 연습도 시위 전에 했다. 이들이 칼레와 함께했다. 16일 아침 9시께 법원명령 집행자에게 결국 집 열쇠를 넘겨준 뒤 칼레는 슈피겔 온라인판에 “이런 연대를 경험하고 내가 어떻게 이웃을 떠나겠냐”며 “돌아올 거다”라고 말했다.
그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칼레는 졌지만 이런 이웃이 있다니 독일이 부럽다 생각했다가 웃기고 있다 했다. 서울 홍대 근처 칼국수집 두리반 철거에 맞서 500일도 넘게 노래 부르고 다큐 찍던 사람들이 있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들과 연대한 희망버스도 있었다. 내가 거기 없었을 뿐이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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