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5.14 19:29 수정 : 2014.05.15 10:44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우리는 젊은이 구해.” 신분증이라도 보고 이야기했으면 억울하지는 않았겠다. 얼굴 보자마자 주인 아줌마는 다짜고짜 어퍼컷을 날렸다. 독일 본 시내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다. 허망했다. ‘사람 구함’ 표지 보고 들어가는 데 1시간30분 레스토랑 주변 배회했더랬다. 오늘만 날인가, 지금 한창 점심때 바쁠 시간이니 조금 있다 갈까 뭉그적거리다 친구한테 전화 걸어 난데없는 신세 한탄 끝에 운명의 유리문을 밀었던 거다.

잘리는 데 1분 걸린 거 같다. 거기다 대고 ‘사실 보기 그래서 그렇지 저 그리 안 늙었어요’라 애원을 하겠나. ‘당신 기준에 젊다는 건 몇 살까지를 말하느냐’고 따져 묻기를 하겠나. 바로 뒤돌아서자니 그것도 뒷머리가 뜨끈해 멍하게 머뭇거렸다. 주인은 굴욕 인증샷 찍을 요량인가 보다. “홀에서 일할 청년 아니면 주방인데 주방은 다 찼어요.” 제기랄, 점심시간 피했는데 손님은 왜 또 꾸역꾸역인가. ‘사실 취미생활이었어요, 괜찮아요’라는 표정을 주문했는데 피부 위로 배달 온 건 우는 듯 찌그러진 입술이었다. 겨우 밖으로 탈출하듯 나오니, 손발 안 맞는 이 몸은 창피하게도 눈물을 빼고 앉았다.

서러웠다. 이것들아, 나 ○○대학 나온 여자야, 나 한국에서 펜대 굴리던 여자라고. 이렇게 어디다 대고 외치고 싶었던 건데 일단 그렇게 말할 독어도 제대로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집에 돌아와 흰머리 염색했다. 분이 안 풀렸다. 괜히 같이 사는 외국인 친구한테 시비 걸었다. “나, 여기서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고 존경받는 그런 직업 갖고 싶어.” 그가 정색하고 되물었다. “그런데 존경받는 직업이란 뭘 말하는 거야? 존경 못 받을 직업은 뭐야?” 마음 생살로 쑥 들어온 내시경이었다. 굳은살 없는 손이 수치인 줄도 몰랐던 내가 그제야 보였다.

앞치마 줄 때 기사 작위 받듯 받아야 한다. 주인장 마음 바뀌면 국물도 없다. 통장 쪼이면 다행히 괴상한 체면은 호강에 겨운 똥 된다. 거듭된 레스토랑 취업 실패 뒤 인력 사무소를 통해 출장 서비스에 지원했다. 막상 오라니 겁이 덜컥 났다. 사장이 몇 명씩 큰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에 파견을 보내면 거기서 서빙도 하고 테이블도 정리하는 일이었다. 밥도 준다기에 희희낙락했는데 루마니아 친구가 이 악물어야 한단다. 뷔페면 또 산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먹어대는지 접시를 옮기다 보면 이두박근이 역도 선수처럼 자란다고 했다. 파티라면 사람들 또 뽕 뽑으니 밤새 일할 폭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고압적인 지배인을 참기 힘들다 했다. 한번은 하도 소리소리 질러대는 통에 중간에 앞치마 집어 던져버리고 나왔다는 거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견딜 수 있을까? 한국에서 15년 전 한 달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적 있는데 굼떠 점장한테 큰 미움을 샀다. 이번에도 폭풍 욕설 들을 거 같았다. 100가지 가운데 99가지 잘해도 그건 당연해 말할 것도 없는 거고 한 가지 안 된 것만 뭐라 하는 사람들이다. 독일어로 하면 욕인지 아닌지도 긴가민가할 테니 더 무서울 거다. 독일 친구한테 이런 걱정 이야기를 하니 그런다. “너, 연습을 미리 해둬야겠다.” 그 친구는 나만 보면 소리소리 질러대기 시작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김소민 독일 유학생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김소민의 타향살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