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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8 20:18 수정 : 2014.10.09 11:29

지난달 20일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누구 호박이 가장 큰지 대결이 벌어졌다.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지난달 20일 오전 은행원 안드레아스 빌트(44)는 자기가 키운 호박을 싣고 로마어(Lohmar)로 향했다. 호박 한 덩이 들어 올리는 데 지게차 동원했다. 460㎏짜리다. 혹시 긁힐까 담요로 덮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누구 호박이 가장 큰지 대결 붙는 날이다. 그는 매일 걸치는 양복 대신 감청색 셔츠를 입었다. 등엔 호박 그림과 함께 ‘EGVGA’(유럽 거대식물 재배자 모임)라 쓰여 있다. 로마어 크레벨스호프에 도착하니 벌써 주홍색 고래 같은 호박 13개가 떡하니 앉아 있다. 경쟁자들이다.

첫번째 호박은 애교였다. 7살짜리 9명이 키웠다. 호박만큼 거대한 사회자는 대화 꼬리를 잡으려 숨가빠했다. 9명 가운데 갈색 머리 사내애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어요?” 꼬마는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몰라요.” 침묵이 사회자 정수리에서 땀 펌프질 했다. 어린이들의 호박은 14㎏이었다. 박수가 터지자 아이들은 정신이 돌아왔는지 함께 호박을 감싸 들어 올렸다.

사회자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어른 말에 답하는 것을 수치로 아는 세대, 사춘기 청소년 5명이다. “이거 사실 아버지가 심은 거예요.” 소녀는 한쪽 다리를 짚고 서서 대뜸 폭로했다. 사회자가 동아줄 잡았다. “그래도 너희들이 정성스럽게 가꿨지?” 측은지심 있는 청소년들이다. 그렇다고 답한다. 사실 이 청소년들, 211㎏짜리 자신들 호박 아낀다. 이름도 지어줬다. 울퉁불퉁해서 ‘마치’다.

벨기에에서 원정 온 요스 가예의 호박을 잴 차례다. 이날의 절정이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웠다. “유럽신기록은 793㎏, 세계신기록은 921㎏, 자 세계신기록을 세울 것인가?” 요스의 귀가 달아올랐다. 내 앞에 선 8~9살 소년들은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835㎏입니다! 유럽신기록!” 퀸의 ‘위 아 더 챔피언스’가 터져 나왔다.

이날 호박만 잰 게 아니다. 2.5㎏짜리 셀러리 뿌리, 26㎏ 애호박에 가장 키가 큰 해바라기까지 쟀다. 안드레아스는 내내 저울 등 등짐 지고 뛰어다녔다. 참가자가 곧 주최 쪽 일꾼인 구조다.

폭우가 쏟아진 틈을 타 사회자가 무념무상 얼굴로 처마 밑에 앉았다. “아우, 허리 아파.” 안드레아스가 푸념하며 맥주를 땄다. 그랑 호박이랑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니다. 부모님은 꽃집을 했다. “처음엔 먹으려고 보통 호박 심었어. 근데 20개씩 되니까 아내가 이걸 다 어떻게 먹을 거냐고 뭐라 하더라고. 그래서 아예 큰 거 하나 키우자 그렇게 시작한 거야.” 첫 씨 뿌린 게 8년 전이다. 첫 수확은 70㎏짜리였다. 매년 실력 늘어 한번 1등도 했다.

호박씨, 아무나 못 깐다. 요스 가예 호박만큼 큰 것에서 씨 한 알을 개인이 사려면 500유로는 내야 한단다. 재배자 모임이 공동구매하거나 회원끼리 나눠 가지면 실속 있다. 호박에 궁전 온실도 지어줘야 한다. 온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로 10m 가로 6m짜리 온실을 안드레아스가 텃밭에 지으니 아내 미간에 골이 파였다. 아침저녁으로 알현도 한다. 4월에 씨 뿌려 출근 전에 비닐 걷고 퇴근 후 덮어줬다. 그렇게 4~5개월 지나면 호박 스모선수가 나온다.

먹지도 못한다. 맛없다. 경연 끝나면 전시하고 3개월 뒤 배 갈라 씨 나누면 끝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호박을 보면 좋아. 한창 부쩍 자랄 땐 저녁때 온실 덮어주고 그 다음날 아침 보면 10㎏ 정도 더 자라 있는 거야. 그게 정말 좋아.” 허망하다 해도 상관없다. 쓸데없어도 괜찮다. 그는 호박을 사랑한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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