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0 20:32
수정 : 2014.12.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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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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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임금 줄까 안 줄까? 독일 한국 분식집 ‘인턴’ 마지막날인 4일째, 주인 아줌마의 입은 오리무중 닫혀 있다. 정식으로 일하게 되면 시간당 7유로를 약속했는데 테스트 기간엔 얼마인지 어물쩍 서로 합의가 없었던 터다. 독일 거주 한인 카페에 가끔 올라오는 한국 식당 성토기도 내 불안에 한몫했다. 팁 떼먹거나 임금이 짠 곳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예민한 것들. 안에 아보카도와 오이, 게맛살을 품은 캘리포니아롤은 닿는 손끝이 거칠다 싶으면 그새 자폭해버렸다. 낯을 가리는지 내 손끝에만 그리 까탈을 부렸다. 아줌마가 썰 때는 10년 키운 애완견처럼 그렇게 척척 들러붙더니 내가 주무르려 들면 아보카도를 게워냈다. 한개 썰 때마다 외과의가 집도하듯 하니 캘리포니아롤의 뱃가죽이 터지기 전에 주인 아줌마의 속이 먼저 터질 일이었다.
이것들이 만약 인간이었다면 이것은 인해전술이었다. 채 썰 무와 당근이 그랬다. 강판 칼은 어찌나 호전적인지 무든 손가락이든 닥치는 대로 갈아버리겠다는 듯 번득였다. 당근 다섯개째에서 피를 좀 보고 말았다. 피는 왜 붉은가. 그리도 선명하게 내 어수룩한 실력을 주인 아줌마에게 일러바쳤다.
접시는 때로 위로를 준다. 12시30분부터 1시30분 점심시간, 주인 아줌마와 조수인 나, 주문받는 청년은 비빔밥에 들어갈 계란을 부치면서 만두를 찌면서 김밥을 말다가 불고기를 볶아대야 하는데 나는 덤으로 아줌마의 속도 볶는다. 손님은 대부분 독일인인데 우중충한 날 라면 맛은 어찌 알았는지 하늘이 궁상 떨면 가스레인지에 라면 냄비가 불난다. 그렇게 가게 안 테이블 5개 사이로 정신을 빼놨다가 개수대 앞에 서면 그 안에 잠수하고 있는 접시들이 입 무거운 친구 같을 때가 있다. 비빔밥처럼 손님이 채식주의자인지에 따라 고기를 넣고 빼야 하는 집중력을 요구하지도 않는 이 접시들은 닦아주기만 하면 말이 없다. 그것도 처음 몇 개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말없는 접시는 눈송이와도 같다. 한 송이씩 내릴 땐 포근한데 떼로 내리면 집 천장을 무너뜨리듯 내 어깨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4일, 하루 세시간여씩 캘리포니아롤 비위 맞추고 접시에 뒤통수를 맞다 보니 임금이 간절해졌다. 단 몇 유로라도 만지고 싶었다. 돈이 90이라면 10은 거창하게도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세상의 어떤 예의를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는 게 너무 두려워질 것 같았다.
마음이 다칠까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안 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달라 했을 때 그 어색한 상황은 어떻게 무마해야 할까, 그러다 이 알바마저 잘리는 건 아닐까. 마지막날 최대한 천천히 앞치마를 벗었다.
주인 아줌마는 한국 무 한덩이를 들고 있었다. 여기 무 같지 않게 알싸한 맛이 나 그냥 먹어도 환장하게 되는 그런 무인 거 안다. 비닐 봉지를 받아드는데, 40유로를 쥐여줬다. 3등분한 팁도 동전으로 줬다. 밥 먹고 가라며 앞으로 언니라고 부르라고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내에 4층 높이 크리스마스트리(사진)가 섰다. 나는 무 한덩이와 40유로를 세상이 살 만하다는 증거품인 양 품고 그 곁을 걸었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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