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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07 19:24 수정 : 2015.01.08 09:53

사진 김소민 제공

[매거진 esc] 김소민의 타향살이

2살 올르는 유모차에 앉아 빵을 빨았다. 누나 리자(10), 형 닐스(13)와 틸(9)은 학교 친구 찾느라 정신없었다. 지난달 15일 저녁 6시, 올르네 온 가족이 본 시내 카이저 광장에 섰다. 그 마실 풍경 주변으로 “난민 들어오고 나치 나가라” 플래카드가 빼곡히 흔들렸다. 애 넷 딸린 올르 엄마 앙겔라(42)가 말했다. “페기다, 나치가 설 자리가 없다는 걸 보여 줘야 해. 걔들이 아니라 우리가 다수야. 근데 페기다는 어디 있지?”

‘페기다’, ‘서구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유럽 애국자들’의 준말이다. 10월께 함부르크에서 몸 풀더니 매주 월요일 여러 도시 돌며 몸집을 불렸다. 드레스덴에선 1만5000명이 모여 짱짱한 세 과시했다. 폭력적인 극우 훌리건이랑 엮지 말라며 자신들의 집회는 평화로운 ‘저녁 산책’이란다. 이날 5시부터 이곳에서 ‘산책’하겠다 한 그들이 미적거렸다. 얘들인가 보면 ‘페기다’ 비꼰 ‘서구의 바보화를 반대하는 모임’ 청년들이고, 쟤들인가 보면 밥, 블랙푀스 등 이곳 사투리 밴드들이 네오나치에 반대해 부른 ‘아따, 야그하잖께’를 귀청 뜯어내게 틀어놓고 있다.

“저기 있다.” 지루해질 참이던 닐스는 광장 한구석에서 소심하게 흔들리는 독일 국기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반색해 버렸다. 300여명쯤 모였는데 이미 풀 죽었다. 3000여명한테 완전히 포위된 까닭이다. 경찰이 두 그룹 사이 사람 띠를 엮어 가로막아 섰다.

목청 대결이다. 페기다 집회를 주도한 멜라니 디트머(36)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야유가 쏟아졌다. “우리가 국민이다.” 디트머가 옛 동독 시민의 민주화 구호를 가져왔다. 반대 진영에서 볼륨 한 톤 높였다. “너희는 국민이 아니라 나치야.” 디트머도 질세라 한 톤 높였다. “우리는 조국 독일을 지키는 애국자다.” “닥쳐. 닥쳐.” 확성기 하나론 머릿수에 밀렸다. 더 강력한 성대의 소유자인 미하엘이 단상에 올랐다. “베토벤의 나라…” 휘파람 조소에 말 중간 토막이 증발됐다. “지금 거리에…얼마나 히잡 쓴 사람들이 많은지…난민들은…호텔에서 호의호식…가난한 독일인은…안 돌보고….” 페기다 다음 주자 입만 열었다 하면 반대 진영에서 온갖 힙합과 하드록이 쏟아져 나왔다.

‘페기다’, 알다가도 모를 단체다. 독일의 무슬림화를 두려워하는 이 단체 집회가 가장 성공적이었던 곳은 무슬림 인구가 0.1%밖에 안 되는 작센주의 드레스덴이었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전체 따져도 무슬림은 5% 정도다. 기독교, 가톨릭, 유대교를 바탕으로 한 독일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데 정작 기독교 교회 연합은 이 집단에 반대하는 본 시내 집회의 주축이다.

극우는 절대 아니라는데 디트머는 극우정당 독일국가민주당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청년조직 대표였다. 전체 난민이 아니라 ‘나쁜’ 범죄자 난민을 거부한다는데 히잡 쓴 거리 여성들까지 걸고넘어지는 걸 보니 그 ‘나쁜’의 기준이 알쏭달쏭하다. 올르 엄마 앙겔라의 정리는 이렇다. “자기 인생 꼬이는 걸 난민과 외국인에게 덮어씌우는 일부 바보들이지.” 그날 페기다의 거리 산책은 3000여명 바리케이드를 뚫지 못하고 무산됐다.

앙겔라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슈피겔> 설문에서 49%가 페기다를 이해할 수 있다 고 답했다. 설문에 뒤통수 맞아도 그날 저녁을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이방인이지만 혼자는 아니다.

김소민 독일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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